사우디-이스라엘 사상 첫 경제협력 모색

2017-06-23 11:03:59 게재

반이란 전선에서 한 단계 격상 추진

'무슬림 납득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사상 처음으로 경제협력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비밀회담을 이어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때부터 사우디는 '이스라엘은 불법 점령세력'이라는 공식입장을 갖고 있다. 양국의 관계 개선이 현실화한다면 거대한 지정학적 파장을 부를 전망이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을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미국의 외교정책은 인류애에 반하는 부끄러운 것'이라는 항의를 담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영국 더 타임스는 최근 아랍권과 미국의 익명 취재원을 인용해 "양국이 공식적 경제협력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비밀리에 접촉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협력 논의는 점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일단은 이스라엘 기업이 사우디 내 지사를 개설하거나 또는 이스라엘 국적기가 사우디 영공을 통과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타임스는 "하지만 양국의 관계 진전은 이란을 적대시하는 두 나라 사이의 동맹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중동 내 지정학적 불안을 야기했던 구조를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양국의 관계 개선 조짐은 1년여 전부터 각종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이스라엘 언론 '채널7'(Arutz Sheva)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와 요르단, 이집트 등 중동 동맹들이 다양한 밀사를 이스라엘에 보내 '관계 개선'메시지를 전달했다. 밀사 중에는 영국의 전 총리 토니 블레어도 포함돼 있었다. 중동 아랍국들은 밀사를 통해 이스라엘에 중동 평화협상을 새로운 조건으로 재개하자고 요청했다. 새로운 조건에는 사우디 주도 정책에 대한 변화도 포함돼 있다고 채널7은 전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사우디 군부 출신 안와르 에쉬키가 이스라엘을 방문해 외무장관 도어 골드와 국방부 소장 요아브 모르데카이를 만났다. 국회의원 다수와도 만남을 가졌다. 당시 이스라엘 일간 '하아레츠'는 에쉬키의 방문에 대해 '대단히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전했다. 사우디 정부의 공식 승인 없이는 이스라엘에 올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도 지난달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각각 방문하면서 이른바 '지역평화 해법'을 지지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모호한 개념인 '지역평화 해법'의 골자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국교수립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실화한다면 이스라엘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중동에서 더 거대한 거래를 추진하고 싶다"며 "한두 나라가 아니라 매우 많은 나라(many, many countries)를 포함한다"고 말해 양국의 비밀협상 뒤에 미국이 자리잡고 있음을 암시했다.

하지만 부정적 파장효과도 만만치않다는 분석이다. 지정학적 문제를 주로 다루는 온라인매체 '오리엔탈리뷰'는 22일 "수년 전부터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반 이란 전선에서 힙을 합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하지만 지정학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양국이 이를 공식 인정한 바는 없다"고 전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이후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한데 묶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반 이란 전선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과의 패권다툼에서 중동 내 안정적인 세력권 확보가 절실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양국의 관계 개선은 전 세계 무슬림 공동체를 큰 충격에 빠뜨릴 수 있다. 중동의 맹주 사우디는 전 세계 이슬람 신도들에게 '성지의 수호자'로 불리는 나라다.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공개적으로 친교를 맺는다면, 팔레스타인 지역을 '불법 점령'한 이스라엘을 정상국가로 승인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오리엔탈리뷰는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경제협력 관계를 맺으면 다른 이슬람국가들에게 긍정적 모범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있지만 역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수니파 주도의 사우디가 다른 국가들에게 '나를 따르라' 할 정도로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데 베팅하고 있지만 그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뇌물과 뒷돈이 필요하다. 문제는 국제유가 급락, 미국 셰일오일 붐 등으로 사우디의 국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스라엘과의 협력 추진 자체로 무슬림 공동체 내에서 사우디의 신뢰성이 심각히 훼손될 수 있다.

오리엔탈리뷰는 "이미 무슬림 공동체 내에서 '사우디가 변절을 꾀하고 있다'는 내용의 소문이 급속 퍼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성지의 수호자'인 사우디의 정책은 그 어떤 경우라도 따라야 한다는 공감대가 와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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