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의사의 역할은 '유능한 중재자'"

2017-08-02 11:23:00 게재

▶"'닥터 스마트폰' 의료계에 디지털혁명 몰고온다" 에서 이어짐

의료 관련 정보 확보전은 치열해지고 있다. 누적된 정보로 또 다른 사업기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거대기업 지멘스의 의료기술 자회사는 '지멘스 헬시니어스'다. 매 시간 전 세계 20만명의 환자가 이 회사가 만드는 의료기기로 검진 받는다. 지멘스 디지털헬스서비스 대표인 아서 카인들은 슈피겔에 "의사들이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날로 진화속도가 빨라지는 기술은 결국 전통적으로 의사가 수행했던 의료서비스를 대체하게 될 전망이다. 인공호흡장비 전문업체인 '드뢰거'는 그같은 변화가 느리지만 확실하게 오고 있다고 보고 있다.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언제 떼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현재 의사들은 디지털 소프트웨어의 도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미국의 존슨앤존슨은 환자 스스로 단시간 마취를 할 수 있게 한 기기를 개발했다. 마취과의사를 통하는 것보다 비용은 1/10 수준이다.

환자들이 직접적 혜택을 경험할 때 디지털 의료기기의 확산은 더 빨라진다. 세계 3대 의료기기 업체 중 한 곳인 독일 '메드트로닉'(Medtronic)은 당뇨병 자가진단·치료 기기를 개발했다. 피부 아래 심은 센서를 통해 혈당수치를 정기적으로 체크하고 환자의 스마트폰에 이를 보여준다. 센서와 함께 달린 펌프에서는 필요한 양만큼만 인슐린을 흘려보낸다.

하지만 의사들의 저항은 상당하다. 그같은 기기가 환자에게 이롭다고 해도 의사들이 이를 적극 권하지는 않는다. 메드트로닉 당뇨병 부문 부장인 미가엘 슈트럭은 "불행하게도 디지털화를 꺼리는 의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유 중 하나는 의사들에게 돌아가는 경제적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 아닌, 디지털정보가 우위에

하지만 결국 시간은 의사의 편이 아니라 기술의 편이 될 전망이다.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을 간파한 기업들이 의료시장에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독일 자동차회사 아우디가 대표적이다. 아우디는 현재 모바일 헬스센터를 개발중이다. 조만간 현실화할 자율주행차는 탑승하고 있는 운전자에게 자유시간을 허락한다. 아우디 엔지니어들은 차량 내에서 건강 검진과 이에 대한 간단한 자가치료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실험하고 있다. 생체자기제어로 불리는 '바이오피드백'(심장박동처럼 의식적으로 제어가 안 되는 체내활동을 전자장치로 측정하고 그 결과를 이용해 의식적으로 제어를 훈련하는 방법) 요법이나 심전도 검사가 그것이다.

아우디의 야망은 더 높은 데 있다. '핏 드라이버'(Fit Driver)라 부르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크리스티아네 슈타르크는 "자동차는 의료검진 용도로 완벽하다"고 말했다. 자동차 내부는 사적이면서 외부로부터 보호적인 공간을 제공한다. 게다가 자동차는 이미 수많은 센서를 장착하고 있다. 슈타르크는 "운전자의 기본적인 검진은 곧 현실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검진 결과 본격적 치료가 필요하다면, 차량 내 비디오시스템으로 의사의 원격검진을 받을 수 있다. 만약 대면 검진이 필요하다면, 자동차 자율주행 시스템이 현재위치로부터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알아서 찾아간다.

자동차와 디지털의료의 만남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지난해 7월 테슬라를 몰고 고속도로를 주행하던 한 남자가 갑자기 폐혈관이 막히는 폐색전증을 일으켰다. 이 운전자는 음성으로 '가까운 병원'을 외쳤고, 차량은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통해 인근 병원으로 이동했다. 운전자는 무사했다.

아우디의 슈타르크는 "미래의 자동차는 운전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을 자동적으로 감지해 이를 처리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의료 부문 스타트업을 키워내는 마르쿠스 뮈셰니히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이제 환자들은 자동차 또는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완벽한 진단정보를 갖고 의사 앞에 서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와 디지털의료의 만남

독일 최대 공공보험사인 'TK' 대표 옌스 바스는 "의사라는 직업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며 "디지털 소프트웨어가 점점 더 많은 질병의 패턴을 읽어내고 그 결과를 의사에게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불가능한, 월등한 수준의 도움을 디지털 소프트웨어로 받게 되면서 앞으로 의사의 역할은 '유능한 중재자'가 되는 것으로 변하게 된다"며 "5~10년 뒤 상전벽해가 일어나면 의사들은 엄청난 변화의 절벽 앞에 서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학박사이기도 한 바스는 자신의 역할이 디지털 촉진자라고 본다. 그는 "의사인 우리들이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부의 압력이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외부의 압력이란 디지털 세계로 진입하는 거대기업들, 또 의료서비스의 간소화·합리화를 꾀하는 스타트업들이 의사를 궁지로 몰 것이라는 의미다. 상거래 도소매부문을 장악한 아마존이 대표적 예다.

보험업은 유망한 디지털기업들이 목표로 삼는 첫 번째 분야다. 의료 디지털화가 막대한 의료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 의사들은 인터넷을 통한 원격검진을 할 수 없다. 비용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로부터의 압력은 날로 상승하고 있다. 미국 의료체인인 '메이요'(Mayo)는 전 세계적으로 유능함을 인정받은 의사들을 보유하고 있다. 2020년까지 매년 2억명의 환자를 유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의 전통적 의료시스템으로는 달성불가능한 모표다. 마요는 온라인 건강상담 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다.

뮈셰니히는 "디지털화를 통해 이제 의료는 수출상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몸이 아픈 사람들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문가를 찾을 수 있다. 반면 보험사들은 해외의 저렴한 의료서비스 제공자를 찾을 수 있다. 바스는 "만약 법이 허락한다면, 국경을 넘나드는 온라인 의료는 환자에게 이롭다"며 "미래 의료서비스는 해외로부터 구매하는 상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출상품으로 변모할 의료서비스

많은 의사들은 일부 환자들이 인터넷으로부터 부정확한 의료정보를 얻고 있다고 믿는다. '몇번의 클릭만으로 갑자가 환자들이 불치병에 걸렸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인터넷 정보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슈피겔은 "하지만 실상은 그 정반대"라며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의료 조언이 일반인에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음성비서 서비스인 '알렉사'는 심폐기능소생법(CPR)을 대중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은 물론 심장마사지를 어떻게 하는지도 알려준다. 페이스북 '봇'(데이터를 찾아주는 소프트웨어 도구)인 자이언트(Gyant)는 채팅을 통해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여부를 판단해준다. 전 세계 사람들은 그같은 서비스로 혜택을 본다. 무료인데다 기다릴 필요도 없다. 게다가 컴퓨터 알고리즘이 인간 의사의 조언에 비해 심장질환을 예측하는 데 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뮈셰니히는 "의사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의사들의 밥그릇이 보장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그는 인공지능 봇들이 조만간 의사들을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의사들은 자신의 진가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며 "하지만 인공지능이 완전히 잠재력을 꽃피울 때쯤이면 그런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비관했다.

예를 들어 각종 사진관련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은 주인이 찍은 과거와 현재의 많은 사진을 비교하며 피부이상 증세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피부과 의사의 미래가 어두운 이유다. 또 병원에서 혈압을 재는 일이 사라질 수도 있다. 각종 연구결과를 보면 진찰실에 들어가는 순간 혈압이 높아지는 환자가 많다. 반면 스마트와치를 착용하면 매 시간 동안 수차례 아무일 없다는 듯 제대로 된 혈압을 잴 수 있다. 뮈셰니히는 "일단 디지털 시스템이 일정 수준, 즉 의사보다 저렴하고 능력도 뛰어난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의료환경은 급격히 변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향후 제기될 질문은 수없이 많다. 현재의 의과대학 시스템으로 디지털 의료가 던지는 거대한 도전과제를 극복할 수 있을지, 동일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훨씬 쉽게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게 될 때에도 과연 환자들은 의사의 권위와 전문성에 동의할지, 의사들이 단 몇분 간의 상담으로 많은 진찰료를 받을 수 있을지, 환자들이 과연 평균 7분간의 상담을 받기 위해 1시간씩 대기실에 기다리고 특진 진료예약을 하기 위해 석달을 기다릴지 등이다. 매우 회의적인 상황이다.

개인정보 취약점은 커다란 걸림돌

물론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 의료가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극복하기 힘든 아킬레스건도 있다. 의료가 디지털화 할수록 환자들은 더욱 취약해진다. 메드트로닉과 세인트 쥬드 메디컬, 보스턴사이언티픽 등 전 세계 3대 의료기기 제조업체의 데이터베이스가 모두 해킹당했다. 지난 5월 MS 윈도우 보안결함으로 영국 병원들이 전면 마비되기도 했다. 게다가 건강관련 스마트폰 어플들은 엄격한 신분보호 규정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해당 어플 중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상황이다. 특히 향후 개인의 생체정보를 다루는 어플들이 보급될 때 문제는 더욱 커질 수 있다.

물론 디지털 의료 예찬자인 뮈셰니히는 "그럼에도 장점이 단점을 훨씬 능가한다"고, 필립스 독일 본사 사장인 피터 벌링스는 "너무 엄격한 정보보호는 의료 부문에서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의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다. 대안을 찾아야 하는 때다.

기술은 이미 우리 발밑에 와 있고 끊임없이 혁신되고 있다. 환자들 스스로 디지털 의료서비스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래의 의사는 여전히 사람일 것이라는 게 슈피겔의 진단이다. 슈피겔은 "눈부신 혁신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 의료는 하룻밤새 의료계를 집어삼킬 수 없다"고 예측한다. 역사적으로 의료 부문에서 새로운 치료법이나 기기가 확산되는 기간은 평균 17년이다. 1816년 청진기가 개발됐지만 의사들이 이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인 건 20년 뒤였다고 한다. 여전히 많은 의사들이 현재도 청진기를 사용하고 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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