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마트폰' 의료계에 디지털혁명 몰고온다

2017-08-01 11:07:28 게재

슈피겔 최신호 진단

독일 주간지 슈피겔 최신호에 따르면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심장전문의인 에릭 토폴이 탑승한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기내의 한 승객이 의식을 잃었다. 토폴은 스마트폰을 꺼내 즉시 승객의 심전도를 검사했다. 심장을 초음파로 스캔한 뒤 혈중 산소 농도를 쟀다. 그리고 기장과 승무원에게 '승객의 상태가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비행기는 운항을 지속할 수 있었다. 승객이 의식을 잃었던 이유는 단순히 심장 박동이 느려졌기 때문이었다.

토폴은 항공기 탑승 중 건강 이상을 호소한 승객들을 여러차례 마주했다. 한 번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승객이 심근경색을 일으켰음을 파악하고 즉시 비행기를 비상착륙토록 한 적도 있다. 토폴은 슈피겔에 "누구나 그같은 심전도 검사를 수행할 수 있다"며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승무원, 심지어 옆자리 승객도 비상 검진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0달러짜리 센서와 심장박동을 분석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 깔린 스마트폰이면 충분하다는 것.

스마트폰만큼 세상을 뒤바꿔놓는 물건도 찾기 힘들다. 쇼핑을 하거나 일정을 관리하는 건 기본 중 기본이다. 정치변화의 움직임도 스마트폰으로 조직되고 있다.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거나 장례절차를 진행하는 것도 스마트폰 하나로 가능해진 세상이다. 스마트폰은 매일 전 세계에서 태어나는 신생아 수보다 10배 많이 팔린다. 그런 스마트폰이 이제 의료계를 접수하고 있다.

수천년 역사에서 아픈 사람은 의사든 주술사든 다른 이의 도움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오래된 인류 역사를 바꾸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의 힘을 겸비한 스마트폰은 의료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태세다. 병의원에서만 가능했던 많은 의료 검진이 언제 어느 때 누구라도 상관없이 행해질 수 있게 됐다.

작고 저렴한 부속품만 있으면 스마트폰으로 인간의 두뇌활동을 검사할 수 있다. 안압이나 혈압 측정은 기본이다. 심전도를 재고 심방세동(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의 일종)을 진단하며 폐의 기능을 점검할 수 있다. 심장의 잡음을 기록하고 귓속의 사진을 찍거나 음주측정을 하거나 대동맥 스캔, 심지어 DNA 배열확인도 가능하다.

슈피겔은 "조만간 일반병원 시설과 장비를 갖춘 스마트폰 사이에 기술적 차별점은 사라질 것"이라며 "오히려 그 반대로 환자들이 이미 스마트폰으로 보다 간편하고 저렴한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의사의 강력한 경쟁자 등장하다

'M-센스'와 같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은 편두통 진단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독일 마그데부르크대학에서는 '네오티브'(Neotiv)로 불리는 스마트폰 어플을 개발중이다. 전문의도 어렵다는 알츠하이머를 완벽히 진단하겠다는 야심찬 꿈을 꾸고 있다. 심지어 영화 '스타트랙'에 등장하는 트라이코더(tricorder)를 연상케 하는 스캐너도 있다. 트라이코더는 피를 뽑거나 촬영하지 않아도 몸에 대기만 하면 질병을 진단해주는 상상 속 의료기기다. 이스라엘의 한 의료기기 업체가 개발한 'SCiO'가 그것으로, 환자의 이마에 갖다대면 수초 만에 진단정보를 알려준다. 다양한 범위의 진단정보를 알려주는 전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 어플이다. 예를 들어 사과에 SCiO를 갖다대면 사과의 구성성분이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난다. 약에도 적용된다. 알약에 갖다대면 구조를 스캔해 기존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한 뒤 그 약이 무엇에 쓰이는지 알려준다. 이를테면 '두통진정해열제의 일종인 파라세타몰 알약'이라고 표시하는 식이다. 현재 이같은 진단은 병원 응급실에서도 보기 힘들다. 그만큼 세상이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의료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가늠하기 힘들다. 환자는 물론 의사와 대형 의료기기 제조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앞으로 엄청난 가격의 대형 의료기기는 불필요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가 있다. 의사들에게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또 의사와 디지털의 경쟁이 의료산업의 혁명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수년 내 환자들은 어느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대신 동네병원을 찾을지, 온라인 진단서비스를 받을지, 아니면 최첨단 진단도구를 갖춘 스마트폰으로 자가진단할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자가 소유 차량 안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세상이 올 가능성이 크다.

슈피겔은 "환자는 이제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며 "반면 의사들의 힘은 그에 반비례해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십억달러 잠재력 가진 산업

1세대 건강관련 스마트폰 어플은 팔찌 모양의 액세서리와 비슷했다. 고작 만보계 정도의 기능을 갖춘 게 전부였다. 하지만 2세대부터 의료기술 부문의 주요 변수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이를 감지한 건 투자자들이었다. 의료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 판단하고 거액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전통 의료시스템을 능가하는 높은 신뢰성과 잠재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현재 디지털 의료혁명의 진앙지는 페이스북이나 스냅챗 등 소셜미디어 공룡들이 지배하는 실리콘밸리가 아니다. 오히려 미 동부지역이나 이스라엘, 유럽 등이 선도하고 있다.

독일의 디지털 의료혁명을 이끄는 사람으로 마르쿠스 뮈셰니히가 꼽힌다. 소아과의사였던 그는 디지털 의료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의사가운을 벗은 데 대해 추호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뮈셰니히는 '플라잉헬스'라는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의료산업 스타트업을 키워내는 회사로, 자금은 물론 노하우를 공유한다. 그의 고객에는 독일 북부 뤼베크에 위치한 '파티엔투스'(Patientus)가 있다. 비디오 영상을 의사의 처방을 제공하는 곳이다. 그는 당뇨병 스타트업 '마이슈가'(mySugr)에도 자문을 제공한다. 마이슈가는 최근 스위스의 거대 제약사인 '로슈'에 인수됐다. 또 임산부를 위한 소프트웨어 '원라이프'를 개발하는 회사에도 관여하고 있다. 또 알츠하이머 진단 어플리케이션을 개발중인 네오티브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중이다.

현재의 의료시스템은 입원과 외래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의료산업 전문가들은 디지털 부문이 곧 입원, 외래 두 부문을 통합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독일은 매년 약 3500만유로(4030억달러, 우리돈 약 450조원)를 의료비로 쓴다. 첨단의료기술 부문은 곧 병의원 등 전통 부문을 따라잡을 전망이다. 뮈셰니히는 2025년 독일의 디지털 의료부문의 가치가 약 1000억유로(약 132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는 "디지털 의료부문은 병의원 등 전통 부문을 앞서게 될 것"이라며 "의사들이 디지털 시스템에서 각종 정보를 얻어야만 할 때가 온다"고 말했다.

스위스 싱크탱크인 GDI도 비슷한 의견이다. 스마트폰이 의료시스템의 핵심 인터페이스가 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GDI 연구부장인 카린 프릭은 "비용 압력이 의료산업을 디지털혁명으로 내몰고 있다"며 "환자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초기 검진을 받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다. 이런 상황을 먼저 이해하는 기업이 디지털 의료혁명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시장을 선도할 것인가

독일 함부르크 공항에서 가까운 뢴트겐 가에는 필립스의 독일 본사가 자리잡고 있다. 네덜란드계 다국적기업인 필립스는 1891년 창사 당시와는 180도 다른 기업이 됐다. 필립스라는 이름이 붙은 텔레비전은 필립스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 다른 회사가 만들지만 라이센스 계약 때문에 필립스라는 브랜드를 달 뿐이다. 전구 부문도 다른 회사에 팔렸다. 남은 것은 의료기기 부문이다. 필립스 독일 본사장으로 4800명의 직원을 거느린 피터 벌링스는 "어디를 가든 오늘날 필립스가 예전의 회사가 아니라는 점, 이제 의료기술 전문회사로 완전히 변모했다는 점을 일일히 설명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벌링스는 "최첨단 기술이었던 텔레비전이 이제는 흔하디 흔한 일반품이 된 것처럼 의료기술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구글과 애플, 삼성, IBM 등 많은 새로운 경쟁자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최첨단 의료기술의 확산이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필립스는 전기칫솔 부문 선두주자다. 일부 모델은 센서를 통해 사용자의 양치 습관을 기록하고 스마트폰 어플에 관련 정보를 표시한다. 필립스는 병의원 전용 대형 의료기기를 팔고 있지만 개인 소비자를 위한 어플 판매도 점차 늘려가고 있다. 필립스는 노약자들을 위해 낙상 감지센서를 개발해 넘어짐의 강도가 얼마인지, 긴급구조가 필요한지 여부를 파악한다. '필립스 바이털 사인 카메라' 소프트웨어는 휴대폰 사진을 통해 환자의 심장과 박동수를 파악하고 심전도 검사를 시행한다. 그 정확도는 놀랄 만큼 높다.

사업모델 역시 변하고 있다. 기존에는 병의원이 최대 수백만유로에 이르는 중후장대한 의료기기를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방식이었다. 이제는 그같은 기계에 대한 이용료를 받는 사업모델로 응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필립스의 휴대용 초음파 기기인 '루미파이'는 스마트폰과 연계해 고해상도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기기의 타깃은 조산사들이다. 즉석에서 임산부를 스캔해 그 결과를 부인과 의사에게 보낸다. 조산사들은 다달이 소프트웨어 이용료를 내면 된다. 앞으로는 루미파이 소프트웨어 자체가 초음파 스캔기록을 완전히 분석하는 것도 멀지 않았다.

이제 앞으로는 의료기기보다 그를 통해 축적되는 데이터베이스가 더욱 귀중해질 전망이다.

"디지털시대 의사의 역할은 '유능한 중재자'" 로 이어짐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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