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주목받는 참여정부 시절 '독수리 5형제(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진보성향의 대법관)'
박시환·전수안, 차기 대법원장 유력 후보로 거론
김지형 공론화 위원장, 이홍훈·김영란 공익활동
독수리 5형제는 노무현정부 시절 진보 성향 판결을 많이 내린 박시환·전수안·김지형·김영란·이홍훈 전 대법관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이들의 활약이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박시환·전수안 전 대법관은 유력한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김지형 전 대법관은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를 다루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 이홍훈·김영란 전 대법관은 공익활동에 열심이다.
법원 안팎에서 두루 지지를 받고 있는 박시환(64·연수원 12기) 전 대법관은 유력한 대법원장 후보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이던 2005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으로 임명된 박 전 대법관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대리인으로 활동한 인연이 있다. 박 전 대법관은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하자 이른바 '제2차 사법파동'에 참여했고 이후 '우리법연구회'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 박 전 대법관은 또 2003년 4차 사법파동에 불을 붙인 주인공이다. 당시 서울지법 부장판사였던 박 전 대법관은 '대법관 제청에 관한 소장 법관들의 의견'을 통해 대법관 인선 관행에 항의하며 사표를 냈다. 비록 김용담 당시 대법관이 예정대로 인선됐지만, 4차 사법파동으로 인해 열린 전국법관회의 이후 전효숙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는 파격 인사가 있었다. 박 전 대법관은 2011년 대법관에서 물러난 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전임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전수안(65·사법연수원 8기) 전 대법관도 박 전 대법관과 함께 주요 차기 대법원장 후보군이다. 전 전 대법관은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통신비밀보호법 감청 관련 조항 등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진보적 법관으로 분류된다. 2006년 국내 두번째로 여성 대법관에 임명됐으며, 대법관 재직 때 엄정한 법 잣대를 적용해 공정한 선고를 내렸다는 평을 받았다. 대법관 퇴임 후에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사장 등 공익활동에 매진해 인권 취약계층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전 전 대법관이 지명될 경우 '최초의 여성 대법원장'이 탄생하게 된다.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두 전직 대법관은 진보적 성향의 판결을 내리면서 사법개혁 필요성에도 공감대를 이루고 있어 어느 쪽이든 대법원장에 임명되면 법원 개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 전 대법관과 전 전 대법관은 대한변협이 추천한 차기 대법원장 후보 5명에도 포함됐다. 문 대통령은 이달 중순쯤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해 국회에 임명동의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양 대법원장과 전임자인 이용훈(75·고시 15회) 대법원장은 모두 8월 18일 후보자로 지명됐다.
김지형(59·연수원 11기) 전 대법관은 최근 '독수리 5형제'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및 에너지 정책의 지침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전 대법관은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5년에는 최연소 대법관에 임명돼 '진보성향'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보혁 양 진영으로부터 합리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2011년 대법관 퇴임 후엔 노동법에 조예가 깊어 지난해 열아홉살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과 삼성전자 반도체질환 조정위원회 위원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당시 구의역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에 노력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여러 안전대책 등을 내놓으면서 호평을 받았다. 또 9년 간 접점을 찾지 못했던 삼성 반도체질환 조정 문제도 양보와 타협을 이끌며 합의점을 이끌어낸 1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공론화위원장을 맡아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2014년부터 법무법인 지평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홍훈(71·연수원 4기) 전 대법관도 2006년 대법관으로 임명되기 전부터 '법원 내 재야 인사'로 불릴 정도로 시대를 앞서가는 판결을 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행정법 환경법 전문가로 한국행정판례연구회와 법원 내부의 환경법 커뮤니티 발족을 주도했다. 진중하면서도 강단있는 스타일로 우리법연구회의 젊은 판사들이 대법원장 후보로 밀 만큼 후배 판사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2011년 대법관 퇴임 후 한양대와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를 지냈다. 2012년부터는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로 있으면서 화우공익재단 이사장을 맡아 공익활동에 열심이다. 화우공익재단은 세월호 참사 사건으로 되짚어 본 국가의 국민안전보장 의무(세월호 참사 이후 법적 논쟁)에 대한 세미나 속기록을 책자로 제작해 무료 배포한다. 우리나라 각계 전문가들의 치열한 토론을 가감 없이 실은 것이어서 학문적으로나 실무적으로 의미가 적지 않아 보인다. 올 2월부터는 서울대학교 재단 이사장을 맡아 활동을 하고 있다.
김영란(61·연수원 11기) 전 대법관은 2004년 참여정부 때 첫 여성대법관으로 임명된 뒤 진보적 성향의 판결을 내리면서 '독수리 5형제'에 이름을 올렸다. 2010년 8월 퇴임 뒤 김 전 대법관은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지난 2011~2012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의 원안을 만든 주인공이다. 입법과정에서 원안이 수정돼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김 전 대법관은 퇴임 뒤부터 계속해서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