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2017-08-11 08:35:33 게재

현재 저는 25년째 논술을 붙들고 있습니다. 도대체 논술이 뭔데 저는 제 청춘을 다 바친 것일까요? 소위 ‘인-서울’ 대학들은 왜 논술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을 좋아할까요? 앞으로 논술 시험 제도는 정말 없어질까요?

아시다시피 지방의 국립대 2곳과 울산대를 포함하여 총 31개 대학에서 논술시험제도로 신입생을 선발합니다. 그 중 울산대와 서울산업대는 자연계 논술만을 시행하니까 인문·사회 논술은 경북대, 부산대를 포함한 수도권 29개 대학에서 시행하는 셈입니다. 서울대, 고려대를 제외한 수도권의 웬만한 대학은 다 논술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인-서울’ 대학들은 왜 이렇게 논술을 좋아하는 걸까요?

첫째, 논술은 의외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합니다. 교육계에 알려진 바와 달리 잘 쓴 논술 글과 잘못 쓴 논술 글은 확연히 구별됩니다. 띄어쓰기, 맞춤법부터 반듯한 글씨 등 기본적인 데에서도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압니다. 논제가 묻는 바를 정확히 독해하여 출제자가 의도한 방향으로 글을 쓰는 점에서도 격차가 벌어집니다. 게다가 가장 기본적인 분석형과 논술의 꽃인 비판형, 합격/불합격을 가르는 대책형 답안을 적절히 쓰는 즈음에 가서는 확연히 잘 쓴 글과 잘못 쓴 글의 차이가 벌어집니다.

둘째, 논술은 노력하는 만큼 실력이 늡니다. 흔히 논술 잘하는 학생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대학에서는 내일이라도 당장 논술시험제도를 폐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천적으로 논술을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선발하는 시험 제도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하면, 논술은 누구나 잘하기 위해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늘고, 실력이 는 만큼 대학에 합격합니다. 일반적으로 논술 공부를 1개월 정도만 해도 학생들은 자신이 쓴 글 중 어느 글이 잘 쓴 것인지, 잘못 쓴 것인지 알게 됩니다.

셋째, 논술 전형으로 합격한 학생이 대학에 들어가서도 탁월한 능력자입니다. 논술은 단순한 시험 제도 이상입니다. 논술을 잘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능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출제자의 의도한 바를 잘 파악하거나, 제시문들의 내용을 잘 이해하거나, 문제와 제시문을 종합해서 출제의 방향성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독해력이 필요합니다. 제시문들의 핵심적인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분석력이 필요합니다. 한 제시문의 관점에서 다른 제시문을 대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능력이 필요합니다.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발상 전환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능력들은 그대로 대학에 들어가서도 꼭 필요하고 중요한 능력입니다. 아니, 대학 공부의 전부입니다. 그러니 논술 전형으로 합격한 학생이 대학에서도 탁월한 능력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인생 25년을 논술에다 바칠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왜 이렇게 논술에 집착한 것일까요?

첫째, 논술은 학생뿐만 아니라 제 인생에도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논술 문제를 해석하다 보면 제 자신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 전체를 반성하게 됩니다. 논술 문제가 원래 학생들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을 묻는 문제이니까요. “우리 대학에 들어오고자 하는 학생, 학생은 이 문제적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학생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에 비추어볼 때 이 문제적 사안을 어떻게 해결해 갔으면 좋겠나?” 이런 차원에서 대학에서는 논술 문제를 내니까요.

둘째, 그래서 논술이야말로 한국의 청년에게 꼭 필요한 물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학교는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5지선다식 지식을 얼마나 많이 습득했는지 반복적으로 테스트할 뿐입니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은 수동적이고 피동적으로 지식들을 머릿속에 집어넣기 바쁩니다. 정작 미래의 성인이 되는 데에 꼭 필요한 질문들―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에 대해서는 묻지 않습니다. 반대로 대부분의 논술 문제에 철학 지문이 포함되는 이유는 학생들에게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을 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논술 공부를 하는 것은 대학 입시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자신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을 다듬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궁금증에 도달했네요. 앞으로 논술 시험 제도는 없어질까요?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고, 김상곤 교육부장관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저의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존속했으면 좋겠습니다만, 없어질 가능성이 높겠지요. 하지만 대학 논술 제도가 없어진다고 논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논술은 한국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공기업이나 사기업 할 것 없이 입사 시험과 승진 시험에 빠지지 않는 것이 논술입니다. 행정고시나 로스쿨 입학시험에도 논술은 엄연히 있습니다. 당장 대학 입학시험에 논술이 사라진다고 논술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려서는 곤란합니다.

더욱 결정적인 점이 있습니다. 대학에서도 형식적인 논술을 폐지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차원에서의 논술은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대와 고려대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두 대학에서는 논술을 폐지하는 대신 심층면접을 도입하여 논술 문제에 준하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합니다. 아마 현재 논술 시험을 치는 ‘인-서울’ 대학들도 이처럼 논술에 준하는 다른 제도를 도입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학이 학생들에게 논술적으로 묻는 것은 꼭 필요하니까요. 학생들이 논술적으로 사고하고 말하고 글 쓰는 것은 정말 중요하니까요.


리 강 선생
압구정국어논술전문학원

리 강 선생
내일신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