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다윈의 핀치

다윈 후예가 목격한 진화의 순간

2017-08-25 10:49:32 게재
피터 그랜트 외 지음 / 엄상미 옮김 / 다른세상 / 1만4800원

피터 그랜트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사람들이다.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에 가면 '찰스 다윈-그랜트 부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진화론의 종주인 찰스 다윈의 후계자로 지금도 갈라파고스 섬에서 핀치새 부리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는 부부의 생물학적 업적을 한국에서도 기리고 있는 것이다. 그랜트 부부는 2015년 이 길 명명식에 참석해 강연을 했다.

그랜트 부부의 40여년의 관찰과 연구를 기록한 기념비적 작품이 출간됐다. 도서출판 다른세상에서 펴낸 '다윈의 핀치'가 그것. 부제 '진화의 비밀을 기록한 40년의 시간'처럼 이 책은 그랜트부부가 1973년부터 갈라파고스 섬에서 관찰한 핀치의 진화과정을 분석한 책이다. 저자들은 핀치의 부리가 진화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고, 자연선택의 작용이 드물지도 느리지도 않다는 사실을 입증해냈다. 그랜트 부부는 지금도 매년 6개월씩 그곳에서 핀치새를 관찰하며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1859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 '부모의 형질이 후대로 전해질 때 주위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는 형질이 선택돼 살아남는다'는 이른바 자연선택 이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진화를 직접 관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고, 때문에 이 이론은 과학적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랜트 부부는 운 좋게도 1977년 그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갈라파고스제도의 대프니메이저 섬에 심각한 가뭄이 들면서 식물이 말라죽자, 단단한 목질을 깨야만 먹이를 구할 수 있는 큰부리와 강력한 근육의 핀치들의 생존률이 높아졌고, 이때 살아남은 핀치들의 자손들은 그들 부모처럼 큰 부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사실 그랜트 부부의 핀치새 연구에 대한 서적은 얼마전 출판된 바 있다. 대중과학 저술가가 쓴 '핀치의 부리'가 그것.<내일신문 2017년 3월 17일자 참조> 하지만 '핀치의 부리'는 제3자가 '종의 기원'의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일생을 바친 그랜트 부부의 헌신과 열정을 기록한 책이라면, '다윈의 핀치'는 그들 부부의 육필 저작이라는 차이가 있다.

'다윈의 핀치'는 진화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그 내용 뿐 아니라, 그리고 그랜트 부부의 집념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인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남봉우 기자 bawoo@naeil.com
남봉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