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준비제도의 실패는 국민의 기쁨?

2017-08-28 10:37:15 게재

10년간 물가목표 미달

2000억달러 소득 혜택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 고용과 물가 안정이다. 연준은 매년 2% 정도의 물가 상승을 안정적 인플레이션으로 규정하고 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준은 2% 목표 달성에 계속 실패했다. 실물경제를 살리겠다며 제로금리와 양적완화(QE)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대거 동원해 시중에 돈을 풀었지만 물가는 연준의 기대를 계속 외면했다. 연준과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 목표 미달성을 걱정스럽게 여긴다. 연준 금리결정 기구인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때마다 "물가가 너무 낮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제롬 파월 연준 이사는 지난주말 CNBC에 출연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 아래로 지속되는 건 미스터리"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연준 우려와는 정반대의 시각도 존재한다. 연준이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서 국민의 가처분소득이 늘었다는 것이다. 미 조지아대 경제학 교수인 제프리 도프만은 최근 포브스지 기고문에서 "연준의 실패로 미국 국민은 약 2000억달러(약 225조4000억원)의 혜택을 봤다"는 분석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잘 알다시피 인플레이션은 숨겨진 세금이다. 현금이나 당좌예금, 초단기 금융상품인 MMF, 양도성예금증서(CD) 등 일반인이 보유중인 모든 돈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가치가 줄어든다. 즉, 인플레이션은 본질적으로 돈에 대한 세금이다. 인플레이션이 매년 2%라면 1년 뒤 예금 가치 역시 2% 줄어든다. 물가가 높을수록 돈에 대한 숨겨진 세금도 덩달아 오른다. 물가가 연준의 목표치 이하였다는 것은 돈에 대한 숨겨진 세금이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다.

도프만 교수가 2000억달러의 혜택을 계산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연준은 2007년 2010년 2013년 등 정기적으로 '소비자금융조사'(Survey of Consumer Finances) 결과를 발표한다. 이에 따르면 2008년부터 현재까지 예금과 수표, MMF, CD 등 미국 가구의 평균 금융자산 보유액은 대략 4만1291달러(약 4653만원)다. 도프만 교수는 개인별 현금보유액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제외했다.

2008~2017년 10년 동안 미국의 평균 인플레이션은 대략 1.6%였다. 개인소비지출(personal consumer expenditure) 가격지수를 이용하든, 국민소득에 영향을 주는 모든 물가요인을 포괄하는 종합적 물가지수 'GDP디플레이터'를 이용하든 마찬가지다. 연준의 목표치 2%보다 0.4%p 낮았다.

미국의 가구가 보유중인 금융상품 평균 액수가 4만1291달러라 할 때, 지난 10년 간 연간 물가상승률 차이 0.4%는 대략 한 가구당 1650달러의 세금을 덜 걷었다는 의미다. 미국 전체에 1억1500만가구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덜 걷은 세금의 총액은 약 1900억달러다. 도프만 교수는 여기에 사람들의 호주머니에 있는 실제 현금액을 고려해 "연준이 물가목표치 달성에 실패하면서 미국 일반인들은 2000억달러의 혜택을 봤다"고 분석했다.

실제 물가와 연준의 목표물가 차이인 0.4%가 대수롭지 않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도프만 교수는 "2000억달러는 상상 속의 돈이 아니라 완전히 실재하는 돈"이라고 지적했다. 2000억달러는 미국 경제규모의 1%가 약간 넘는 수준이다. 또 200만 가구가 집을 구매할 때 초기지불금(down payment)으로 내기에 충분한 돈이다. 미 행정부가 고등교육에 쓰는 예산의 40%에 해당하는 돈이기도 하다.

물가와 임금이 동시에 오른다면 인플레이션이란 괜찮은 징조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도프만 교수는 강조했다. 개인이 구매하는 재화나 서비스 물가와 같은 폭으로 소득이 오른다고 해도, 개인이 보유중인 모든 현금과 현금성자산의 가치를 모조리 깎아내리는 건 상쇄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인플레이션은 돈에 대한 세금으로 모든 이의 구매력을 감소시킨다"며 "지난 10년 간 연준이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사실에 미 국민은 감사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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