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위기학생' 치유 예방정책 들여다보기

"쌤, 도서관 다니면 저도 대학 갈 수 있어요?"

2017-11-01 11:00:12 게재

자존감 높아진 아이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기 시작

숲 치유프로그램에 '화해 존중 공존 이해 사과' 녹여내

"대박~! 창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인형인줄 알았어요." "저도 저렇게 공부하면 대학 갈 수 있을까요?" 지난달 27일 국립세종도서관을 찾은 최 훈(가명. 인천 ㄷ기계공고 2학년)군이 멋쩍게 웃었다.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최 군과 같은 조 친구들은 "이렇게 큰 도서관은 처음 와본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우리와 뭔가 다른 것 같다. 진짜 멋있어 보인다"며 소곤댔다.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세종호수공원에서 즉석 연주회가 열렸다. 청주 우쿨렐레 공연팀이 점심시간에 아이들을 위한 재능기부 연주를 하고 있다.


최군은 자신의 처지를 조용한 목소리로 털어놨다. 하루만 더 결석하면 졸업을 못하고 유급하거나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연중(한 학년) 60일을 결석하면 유급 처리되는 게 학교 규정인데 59일을 결석했다고 말했다.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인천지역 고교생 25명이 지난달 25일 2박3일 일정으로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교육부가 주최하고 충북교육청이 주관하는 '자존감회복과 학교생활 적응'을 위한 단기 여행이다. 매년 전국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17~20회 운영하며 '달리는 대안학교'로 불리고 있다.

"우리 좀 멋있는 것 같다"│ 국립세종도서관에서 미션 수행에 나선 인천 ㄷ공고 학생들이 주제에 맞는 책을 고르고 있다. 사진 세종시교육청 제공

아이들은 충북 청주 상당산성휴양림에서 여장을 풀었다. 조별로 요리를 하고 상당산성 정상에서 붉은 노을을 보며 소리도 질렀다.

런닝맨 시간에는 "숨이 차서 폐가 터질 것 같다"면서도 쉬지 않고 뛰었다. 명상을 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하는 시간도 보냈다. 내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원하는 '소원주머니'를 만들어 나무에 걸고 밤하늘 별을 보고 노래도 불렀다. 밤에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본 후 토론했다. 마지막 날은 국립세종도서관에서 조별로 토론하고 결정한 미션을 수행하는 일정이다.

"나에게 더 이상 결석은 없다" = "내가 학교 다니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학교 다니기가 정말 싫어요. 2달 정도 가출도 해봤지만,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다시 학교로 왔어요." 아이들은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는 부모 성화에 학교에 다니지만, 졸업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보다 돈 많이 주는 '알바'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첫날 숲캠프에 참여하면서 운영진과 신경전을 벌였다. 프로그램 마칠 때까지(3일 동안) 최대한 '금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에 강하게 거부감을 나타냈다.

하루 한 갑정도 피운다는 정훈(가명. 2학년)군이 학교로 돌아가겠다며 떼를 썼다.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 운영 스텝들이 설득에 나섰다. "충분히 할 수 있다. 한꺼번에 다 하지 말고 조금씩 실천에 옮겨보자"고 설득했다. 멘토 교사들은 아이들의 의견과 주장을 차분하게 경청했다.

멘토로 참여한 유 민(충북대학교 교육대학원)씨는 "왜 결석하는지,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부모와 갈등의 골이 깊은 이유를 충분히 들어주고 나니 아이들 표정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 입에서 "한번 해볼게요"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아이들은 담배대신 막대사탕을 입에 넣고 빨았다. 정훈군은 "그동안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 자신에게 담배를 참겠다는 약속을 했고, 지키니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옆구리 터진 김밥을 용접하라│힘 조절을 못해 김밥이 터졌다며 걱정한 아이들이 밥풀과 김을 이 용한 용접기술 로 감쪽같이 복구했다.

프로그램 강도가 높아질수록 아이들의 자존감도 높아졌다. 인솔교사들은 "신기하게도 아이들 입이 깨끗해졌고(욕설이 줄어듬),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훈군은 "앞으로 남은 두 달 동안 절대 결석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유 민씨는 "행복열차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아이들의 자리에서 소리지르고 노래하고 또래문화에 익숙하도록 도와주는 '감동과 신뢰'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며 "아이들 가슴속에 응어리진 아픔을 받아주고, 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넣어주는 일이 멘토의 업무"라고 설명했다.

옆구리 터진 김밥은 '용접'으로 = "쌤, 김밥 옆구리가 터졌는데 어떻게 해요?" 꼬마김밥 만들기에 나선 아이들이 "힘 조절을 못해 김밥이 터졌다"며 깔깔댔다. 멘토가 "너희들 잘하는 '용접'으로 실력발휘를 해보면 좋겠다"고 말하자 아이들 눈빛이 반짝였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김을 재단하고 밥풀을 칠해 감쪽같이 붙였다. "우리 1조 너무 잘하는 것 같다. 이러다 분식집 차리겠다"며 웃었다. 조별로 김밥 만들기를 하면서 다양한 창의력을 쏟아냈다. 단무지는 어떻게 썰지, 나물은 얼마나 넣을지 토론하거나, 샘플을 만들어 친구 입에 넣어줬다. 간을 맞추고 모양새를 내는 작은 일까지도 서로의 생각을 존중했다.

마지막 날 국립세종도서관 탐방을 마치고 세종호수공원에서 점심식사와 조별 발표회를 준비했다. 도서관에서 준비한 내용을 무대에서 설명하는 시간. 행동은 어눌했고, 마이크를 사용했음에도 목소리는 작았다. 설명하는 데 자신감이 떨어졌고, 미리 준비하고 연습한 설명자료는 뒤죽박죽이 됐다. 아이들은 겸연쩍게 웃고 자리로 돌아갔다.

총평을 맡은 인솔교사는 "한 번도 발표를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라며 "정말 미안하다. 그동안 너희들에게 발표할 내용이나, 시간을 주지 않은 교사와 학교 잘못"이라며 용서를 구했다.

아이들은 "쌤, 괜찮아요. 연습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박수로 답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과 신뢰'가 번개처럼 튀는 순간이었다.

기적은 또 일어났다. 세종호수공원으로 연습차 나온 청주시 우쿨렐레 공연팀(키포나 알로하)이 아이들을 위한 즉석 재능기부 공연에 나선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이해인 수녀의 시가 연주됐다. 이어 서영은의 '혼자가 아닌 나' 이문세의 '깊은 밤을 날아서' 등 아름다운 곡이 세종호수에 울려 퍼졌다. 점심시간에 호수공원에 산책 나온 시민과 공무원들이 박수를 보냈다. 아이들은 "이왕이면 뽕짝도 부탁해요"라며 연신 '앵콜'을 외쳐댔다.

정훈군은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간직하고 싶다"며 "우리 같은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준 어른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인천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내년에 또 오고 싶다"며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웠고, 행복열차 운영진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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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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