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기업의 비밀 │⑯ 동구

28년간 커피머신 한우물 … 글로벌기업과 본격 경쟁

2017-11-24 10:18:15 게재

무차입 경영·매출액 15% 연구개발 투자 … 국내 소형 커피머신시장 90% 이상 점유, 27개국 수출

첫 직장인 무역회사를 그만뒀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직장생활에 미래를 찾을 수 없었다. 사업을 결심했다. 막상 무엇을 할지 막막했다. 고민을 안고 미국여행을 떠났다.

동구 박원찬 대표가 고급 에스프레소머신 '베누스타-렘 D9'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김형수 기자

6개월간 미국여행에서 돌아온 1989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회사를 차렸다. 서울시 마포구 삼창프라자 8평 사무실에서 2년간에 걸쳐 첫 견본품을 만들었다. '커피자판기'였다.

28년이 지난 지금 매출 280억원에 직원 98명인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외국산이 차지했던 국내 소형 커피머신시장을 90% 이상 장악했고, 세계 29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28년간 이어온 '무차입 경영'과 적극적인 '연구개발'로 고급 에스프레소머신을 개발, 글로벌기업들과 경쟁에 나섰다.

커피머신 전문기업 동구(대표 박원찬)의 성장기다.

티타임 200만대 판매 = 동구는 소비자에게 생소한 기업이다. 하지만 식당에서는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식당 계산대 옆 서비스용으로 배치된 커피자판기 '티타임'이 동구 제품이다. 티타임은 28년간 200만대 이상 팔렸다. 티타임은 동구를 국내 커피머신시장의 절대강자로 서게 한 일등공신이다.

창업주 박원찬 대표가 커피머신시장에 뛰어든 때는 다방에서 커피를 시켜먹던 시절이었다. 자금도, 장비도 부족했던 그때 박 대표는 직원과 함께 아크릴판을 자르고 붙여 커피머신 시제품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6건의 특허를 획득했다. 이런 노력 끝에 1991년 국내 최초 커피머신 '티타임'이 개발됐다. 1993년에는 커피머신 업체 중 처음으로 커피머신에 액정화면(LCD)을 적용했다.

박 대표는 직원과 함께 무작정 전국을 누볐다. 수없이 문전박대 당했다. 하늘이 도왔을까. 삼성전자에서 연락이 왔다. 4년차 영세기업 동구의 연매출은 15억원에 불과했다. 방 한칸 규모 공장도 볼품이 없었다. 삼성전자 협력사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박 대표는 "사장이 돈이 없지, 직원들 실력이 없는 회사가 아니다. 경영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질테니 일단 시작해보자"고 설득했다. 삼성전자는 '3년 내 생산현장 개선'을 약속받고 파트너사 계약을 체결했다.

동구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삼성전자에 납품했다. 삼성전자와 거래하자 LG는 물론 네슬레 동서식품 등도 동구와 손을 잡았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1995년 러시아에 처음으로 수출했다.

외환위기를 기회로 = 1997년 외환위기 사태도 동구에게 기회였다. 2001년 삼성과 LG가 커피자판기사업을 정리하자 박 대표는 '독자 브랜드화'를 결심했다. 특히 불경기로 인해 비용을 줄이려 저렴한 커피자판기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 식당에서도 손님을 확보하려 자판기를 들여놓았다. '티타임' 판매가 급증했다.

박 대표는 원두커피시장을 겨냥한 제품개발에 착수했다. 커피문화가 믹스커피에서 원두커피로 옮겨가자 원두커피머신시장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원두커피머신은 스위스의 유라(Jura)와 독일의 WMF가 잡고 있었다.

박 회장은 "유럽산 최고급 제품과 경쟁해 살아남아야 내일이 있다"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시작됐다. 전문가급 원두커피머신 '베누스타' 브랜드 제품개발에 매달렸다.

8년만에 성능은 유럽 제품과 비슷하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인 '베누스타-로제타'를 출시했다. 수입 에스프레소머신은 한대에 1500만~3000만원 수준이다. 베누스타-로제타는 500만~700만원에 팔린다. 동구 제품 때문에 수입회사들이 제품가격을 내리기도 했다.

베누스타 제품에 사물인터넷(IoT)을 결합한 '베누스타-렘 D9'도 내놓았다. 7인치 초대형 LCD 터치스크린 및 안드로이드 기반 OS를 탑재해 32종의 다양한 커피를 제공한다.

이 제품은 전자동 추출기로 원두량에 따라 최대 20그램까지 자동조절이 가능하며 이중 미세필터 설계로 풍부한 크레마 생성과 최적의 에스프레소 추출이 가능하다. 인터넷을 통한 매장별 통합관리가 가능한 혁신제품이다.

독자브랜드 '베누스타' 세계시장 도전 = 동구가 커피머신시장에서 세계강자와 경쟁할 수 있는 비결은 연구개발(R&D)에 있다. 동구는 매년 매출액의 20%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커피머신의 570여개 부품 중 두 세가지를 빼고는 모두 국산화에 성공, 선진국 커피머신 기술력의 95% 가량을 따라잡은 것도 R&D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 대표는 요즘 해외시장 개척에 골몰하고 있다. 현재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동남아 등 29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수출규모는 매출액(2016년 280억원)의 약 15% 정도다.

박 대표는 "제조하는 사람이 국가에 기여하는 길은 수출이라고 생각한다. 내년부터는 해외시장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미국 가전전시회(CES)에 동구의 베누스타 브랜드가 출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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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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