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화중선을 찾아서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을 만난다

2017-12-01 10:04:03 게재
김진송 지음 / 푸른역사 / 1만7900원

목수이자 전시평론가, 전시기획자, 작가 등 전방위로 활동하는 김진송씨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풍경을 그려낸 팩션. 1923년 '시사평론'에 실린 기생 하중선의 글 '기생생활이 신성하다면 신성합니다'가 이 책의 소재이자 화두다.

"남성을 성적 노리개로 삼아 남성 중심 사회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도발적인 화중선의 글은 식민지 조선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책은 화자인 '나'와 소설 속 허구의 기생 화홍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줄거리를 이룬다. 나는 화중선의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글의 실제 필자가 화홍일지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그녀를 찾아 나선다.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당대 지식인 사회의 풍경, 기생의 문화사와 사회적 의미가 상세하게 소개돼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역사교양서라는 느낌이 든다.

특히 역사교양서로서 이 책의 미덕은 교과서에서 만나지 못하는 식민지 조선을 풍경을 그려낸 점이다. 이는 당대의 텍스트를 감탄스러울 정도로 다양하게 활용한 덕분으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9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 1927년 기생들을 위한 잡지 '장한'이 창간됐다는 기록은 교과서에서 접할 수 없다. 친일파 송병준이 기생조합인 권번을 운영했다는 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또 소설가 주요한이 한청산이란 필명으로 기생 폐해를 막기 위해 "오후 9시 이후에 혼자 다니는 남녀는 일주일 이상 구류에 처하는" 법을 만들어 남녀교제를 권장하자는 글도 마찬가지다. 당대 언론을 장식했던 기생 강명화의 순애보라든가 김동인을 비롯한 문인들의 사생활도 소소한 읽는 맛을 제공한다.

저자는 "소설의 형식을 취했지만 소설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모던을 구가하며 급격히 변하는 사회, 지리멸렬한 지식인 군상, 시기에 따라 변모하는 기생들이 등장하는 대목은 당시 실제 발표됐던 여러 글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혹은 발췌해 변용한 글로 채워져 있다"고 설명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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