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위임과 책무

2013-07-15 11:15:53 게재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이 되어간다. 그런데 여전히 대통령만 보이고, 국정을 함께 책임져야할 집권당의 정치인과 행정부의 관료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업무를 헌법에 따라 충실히 수행해야 할 책무를 진다. 대통령이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업무를 '국정'이라고 통칭할 수 있는데, 이런 국정을 대통령이 혼자서 수행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정의 많은 부분을 행정부 각 부처에 위임하고 관리해야만 한다.

성공적인 대통령은 좋은 비전과 정책 플랫폼을 가지고, 그런 정책의 입법화를 위해 정치력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권위주의 시절과 달리, 입법부 및 국민과의 정책소통 능력이 대통령의 정치력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좋은 의도와 소통만으로는 성공적인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국정의 위임과 관리를 얼마나 잘 하느냐가 성공적 대통령의 또 다른 필수 요소이다.

국정의 위임과 관리를 잘 하는 길은 단순하다. 위임에 따른 재량을 부여하고, 재량에 대한 책무를 지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성공 원칙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재량은 별로 주지 않고 책무만 강조하여, 관료들은 대통령만 바라보고 능동적으로 일을 하지 않기도 한다.

권력 윗선 눈치보는 관료들 속성

반대로 적절한 책무성(accountability)없이 재량을 주어, 관료들이 부처이기주의에 이런 재량을 남용하기도 한다.

적절한 재량과 책무의 부여라는 원칙은 단순하나 그런 원칙을 상황에 맞게 잘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의지와 좋은 의도가 있으나 관료들의 비자발성과 이기주의로 국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관료들을 탓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난맥상에 대한 근원적 책무는 대통령에게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은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국정에 대한 책무를 지고 있다. 따라서 위임 받은 국정을 다시 위임하고 관리하는 것은 이런 책무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료들에게 위임하면서 재량과 책무를 적절히 못 부여해 결국 국정 관리에 난맥을 보이는 것이라면, 이는 대통령이 국민에 대한 책무를 제대로 못 지킨 것이다.

재량과 책무의 문제 이전에 장관의 자질 문제로 위임된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더라도 그런 장관을 인선한 대통령이 국민에게 책무를 느껴야 한다.

장관과 관료들이 제대로 일을 못한다고 대통령이 질책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질책에 앞서 대통령이 국민에 대한 책무를 충실히 못 하고 있음을 절감하고 자신의 인사 및 위임한 재량과 책무가 잘 못 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관료 인선 잘못도 대통령의 책임

이와 같이 국민에 대한 궁극적 책무감을 느끼지 않는 대통령이라면 반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일 뿐이다. 정부와 관료들의 일을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거나 잘 못을 꾸짖기만 하고 자책감을 못 느끼는 대통령은 국민에게 감흥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괴리시키게 된다.

박근혜정부는 출발선을 지난 지 아직 오래되지 않았다. 대통령은 무한한 책무감을 가져야 한다. 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감흥을 주고 국민 안에서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