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아이콘' GE에 무슨 일 생겼기에…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GE제국 흥망성쇠' 특집
미국 남북전쟁 이후 일어난 기술혁신이 지구촌의 일상생활을 뒤바꿨다. 전구로 활동시간이 늘어났고, 전기제품으로 집안일이 보다 쉬워졌다. 발전소가 가정에 전기를 공급했다. 제트엔진기로 거리가 단축됐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바다 건너 대륙 너머의 삶이 각 가정에 배달됐다. 엑스레이로 의사들은 신체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진공관은 초기 컴퓨터의 두뇌가 됐다. 산업용 플라스틱은 안 쓰이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 모든 기술은 바로 제너럴일렉트릭(GE)이 개발했거나 상용화한 것이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최신호가 다룬 'GE제국의 흥망성쇠'에 따르면 126년 역사의 GE는 현대 기업 자본주의의 힘과 다양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이 회사는 소비재와 산업기계, 상업용 비행기, 핵잠수함, 레이더고도계, 로맨틱 코메디까지 만든다. 노벨상을 받았고 연합국이 1, 2차 세계대전을 이기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막대한 수익과 연결시켰다. GE에 투자한 이들은 경기침체나 신기술로 인한 창조적 파괴, 20세기 말 미 제조업의 몰락 등에서도 보상을 받았다.
블룸버그는 "GE의 찬란했던 역사가 끝날 위기에 처했다"며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파산에 대해 '점진적으로 시작해 급작스럽게 이뤄진다'고 했는데,GE의 상황이 거기에 꼭 들어맞는다"고 전했다.
GE는 08년 미 연방정부와 워런 버핏의 지원으로 구제금융을 받은 바 있다. CEO 제프리 이멜트가 이끌었던 지난 16년 동안 GE는 다우존스 편입종목 중 최악의 실적을 냈다.
하지만 지난해 GE는 더욱 최악의 국면에 들어섰다. 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최근까지 다우지수는 41% 상승했다. 반면 GE의 가치는 46% 하락했다. 1200억달러가 허공에 사라졌다.
지난해 하반기 실적 보고에서 월가를 깜짝 놀래켰다. GE는 시장이 이미 크게 낮춰잡은 수익 예상치를 절반만 채우는 데 그쳤다. 또 현금부족으로 배당금을 50%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전구 부문을 포함해 200억달러 규모의 사업부문을 매각하거나 분사하겠다고도 밝혔다. GE는 이미 2016년 중국 제조업체 하이얼에 가전사업부와 GE브랜드를 매각한 바 있다.
새해 들어서도 악재는 이어졌다. 지난달 금융서비스 부문 자회사인 GE캐피털은 지난해 4분기 62억달러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10여년 전 손해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증권거래소가 GE캐피털에 대한 회계조사를 벌이고 있다. GE의 새로운 CEO인 존 플래너리는 "모든 옵션을 놓고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을 완전히 해체하는 방안도 포함해서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GE가 만드는 제품의 품질과는 관련이 거의 없다. GE 제트엔진은 여전히 글로벌 1위 제품이다. 가스와 석탄, 핵발전 역시 전 세계 발전량의 1/3을 차지한다. GE가 만드는 CT스캐너와 MRI 기기는 극찬을 받는다. 도대체 GE에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제너럴모터스(GM)나 보잉사와 달리 GE는 산업 한 부문이나 제품 1개로 기억되지 않는다. 오히려 '산업혁신의 아이콘'으로 인식된다. 토머스 에디슨과 함께 GE를 창업한 찰스 코핀은 원래 신발제조업자였다. 코핀은 원자로제조 기업인 웨스팅하우스와의 특허분쟁으로 파산위기에 몰렸던 GE를, JP모간과의 담판을 통해 살려냈다. 또 산업연구소를 설립해 수많은 아이디어를 제품화했다.
'세기의 경영자' 통해 승승장구
코핀 이후 GE의 비밀병기는 뛰어난 경영자들이었다. GE는 조직의 엄격함을 과학발명 과정에 접목했고, 또 그 과학적 엄격함을 경영진에 이식했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GE는 심리학자를 고용해 직원연구부서를 신설했다. 허드슨강변 인근 부동산을 구입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영리더십 사관학교 '크로톤빌'을 설립했다.당대와 미래의 지도자를 한데 모아 GE의 가치를 가르치고 시험하며 주입시켰다. 1970년대 GE의 CEO이자 이사회 의장이었던 레지널드 존스는 당대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였다. 그는 GE를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시켰고, 미국 대통령 4명의 조언자로서 활동했다.
존스의 후계자는 플라스틱 사업장에서 시작해 고위직까지 오른 화학공학자 잭 웰치였다. 웰치가 이끄는 GE는 당대 최고 수재들의 집합소였다. 웰치는 리더십 개발에 주력했고, 실적이 나쁜 사원들은 가차없이 솎아냈다. 그는 불량제로에 도전하는 '식스시그마' 운동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였다. 전도유망한 젊은 간부들은 의료기기 부문에서 전차제조 분야로, 다시 방송네트워크인 NBC로 이동하는 등 GE 제국의 극과 극을 오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입하고 시험하는 차원이었다. 간부들은 식스시그마로 무장하고 웰치의 격려를 받으며 크로톤빌에서 휴식 겸 공부를 했다. GE 경영진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닿는다면 그 어떤 것도 경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이런 자신감은 능력 있는 CEO는 수십년 재임할 수 있다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되면 CEO는 하루하루 주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다. 기업의 미래를 멀리 내다보고 경영을 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웰치는 걸어다니는 경영학 교과서가 됐다. 포춘지는 웰치를 '세기의 경영자'로 꼽았다. 기타 무수한 경영, 경제 관련 매체들이 그의 경영능력을 칭송했다. 2001년 웰치의 뒤를 이어 이멜트가 GE를 이끌게 됐을 때 함께 경쟁하던 2명의 후보들은 탈락 즉시 3M과 홈디포에 영입됐다.
거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에 비판적인 투자자와 경제학자들도 GE 앞에선 꼼짝할 수 없었다. 1980년대 문어발 확장을 하는 거대기업들은 굼뜨고 불투명하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만연했다. 하지만 GE는 오히려 찬사를 받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GE를 '최고 수준의 거대기업'이라고 불렀다. GE는 사업다각화를 하면서도 각각에 집중하는 기업, 규모가 크지만 재빠른 기업, 개별산업부문의 주기적 불황에도 흔들림없는 기업이었다. GE가 일반회계원칙(GAAP) 대신 변칙적 회계관행을 고수해도 투자자들이나 분석가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GE의 유능함은 변하지 않는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웰치가 이끄는 GE의 순수익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1981년 16억5000만달러에서 2000년 127억달러에 이르렀다. 오히려 전체 인력은 40만4000명에서 31만3000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익의 원천이 바뀌기 시작했다. 웰치 재임 초기엔 기술혁신과 제조업 경쟁력,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수익을 냈지만, 점차 금융서비스 자회사인 GE캐피털에 의존하게 됐다. 대공황 당시 세탁기나 냉장고를 사려는 소비자들에게 할부금융을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한 GE캐피털은 어느새 보험과 항공기 리스, 모기지금융 등을 모두 다루는 금융거물로 성장해 있었다.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 경제에서도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부문이 금융업이었던 90년대 GE캐피털은 GE에게 든든한 '빽'이었다.
인수합병 실패 … 금융업에 기대다
GE캐피털은 미국에서 돈을 빌려 법인세가 낮거나 없는 곳에 역외사무소를 설립했다. 그렇게 아낀 돈은 미국 내 GE 제조업장의 줄어드는 수익을 벌충하기 위해 빌린 대출의 이자를 갚는 데 썼다. 한마디로 미국 정부가 거둬야 할 세금을 자사의 대출 이자비용으로 돌린 셈이다.
GE캐피털은 유동성자산을 분기말에 매각하거나 사들였다. 투자자들이 중시하는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서였다. 이런식으로 매매된 자산의 질은 낮았다. 하지만 잭 웰치가 경영하던 시기는 미국 증시의 유례없는 호황기였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GE캐피털의 자산 퀄리티를 따지지 않았다. 1981년 GE의 시가총액은 140억달러였지만, 웰치가 은퇴하던 2001년 4000억달러를 훌쩍 넘었다.
이멜트가 경영권을 넘겨받으면서 이전 시기 잠재돼 있던 위기가 현실화됐다. 당시는 닷컴버블이 꺼지기 시작한 때이자 9.11테러사건이 미국을 강타한 때였다. GE의 항공기사업 부문이 치명타를 맞아 수십억달러 손실을 냈다. 시간이 갈수록 GE 주가는 쪼그라들었다. 웰치 당시 최고가에 비해 1/3로 급락하자 이멜트는 월가의 강한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이멜트는 엔터테인먼트기업인 비벤디유니버설을 55억달러에 인수하고 영국 의료영상기업 아머샴을 95억달러에 사들이는 등 신수종사업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회계부정으로 파산해 경매에 나온 엔론사로부터 풍력터빈 사업부문을 인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멜트의 잇따른 기업인수는 비용 대비 효과가 저조했다. 비싼 돈을 주고 샀지만 기존 사업과 시너지효과를 내지 못했다. 멜리우스리서치의 CEO이자 GE 분석가인 스캇 데이비스는 "이멜트가 쏟아부은 인수합병 비용을 그냥 주가지수 인덱스펀드에 넣어두기만 했더라도 수익이 2배가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멜트는 GE의 원뿌리인 제조업기반으로 돌아가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GE 전체 부문 중 성장한 곳은 GE캐피털뿐이었다. GE캐피털은 신용카드회사와 비우량대출기관, 상업부동산 등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면서 이익을 4배 늘렸다. 이 부문은 경험이 일천하고 경쟁력이 낮은 곳이었지만 GE의 기업 문화는 '안되면 되게 하라'였다. GE캐피털은 더욱 과감히 뛰어들었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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