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김정일 방러와 지경학(地經學) 전략

2011-08-24 12:29:21 게재

불과 석달 전에 중국을 방문했던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또다시 러시아 방문길에 올랐다. 중국방문도 그렇고 러시아방문도 그렇고 경제문제가 우선인 것 같다. 러시아는 냉전이 종식된 후 한 때 한국 일변도로 북한을 외면했던 역사가 있다. 그 외면은 동북아에서 자신이 외면당하는 난감한 처지로 이어졌다. 러시아는 다시 북한과 관계개선에 나섰고 2002년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두차례 방러로 이어졌다.

양국은 냉전시기 동맹관계였기 때문에 오늘의 양국관계에도 지정학(地政學)적 요소가 없지 않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러시아가 냉전시기처럼 북한편에 서줄 것을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나 중국이 냉전시기로 회귀할 수 없다는 것은 북한이 더 잘 알고 있다. 결국 북한의 대중 대러 관계는 이제 지경학적(地經學 GeoEconomics)으로 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열강들이 패권질서를 추구하던 19세기말, 러시아의 남하전략과 일본의 대륙진출전략 그리고 중국의 전통적 지위를 고수하려는 전략들이 한반도에서 충돌하면서 전쟁으로 이어졌다. 한국전쟁도 한반도를 둘러싼 대국들의 지정전략의 충돌이었다. 냉전이 종식된 후 북핵위기 역시 북미간 지정전략의 충돌로 야기되고 불거져 왔다. 오늘의 남북관계, 북미관계, 북일 관계는 그 결과물일 것이다.

동북아에서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지정학과 지경학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최근 한미일과 북한과의 관계에는 전통적 지정학의 그림자가 더 짙고 북중 북러의 관계에는 지경학적 요소가 보다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경학적 시각에서 북한은 과연 주변국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한반도 둘러싼 지정학과 지경학의 충돌

우선 러시아는 에너지자원이 집중적으로 매장된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을 개발하고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방러 목적 중 하나로 분석되는 러-북-남 가스관 연결사업과 철도건설 분야에서의 러-북-남 협력은 러시아 극동지역개발에 필수적인 것이다. 북한과의 협력이 절실한 대목이다.

중국은 경제발전이 남풍북점(南風北漸)하면서 가장 북쪽인 동북지역의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섰다. 북한과 황금평, 위화도 공동개발과 나선특구 공동개발의 문을 열었다.

필자가 지난달 직접 방문해서 본 원정리부터 나선까지는 50km 도로 전체가 공사장이었다. 중국동북의 중동부지역에 바닷길이 트이는 것이다. 역사적인 사건이다.

중국은 수많은 주변국을 이웃하고 있는데 그것은 전통적인 지정학적 시각에서는 오히려 열세라 할 수 있다. 이제 중국은 이 지정학적 열세를 지경학적 우세로 바꿔야 할 시점에 왔다. 북한과의 협력이 그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도 북한을 통합의 대상으로 하는 나라는 없다. 북한은 남한보다 면적이 더 넓고 풍부한 자원과 우수한 인력을 가진 나라이다. 통일 전이라 해도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연결돼 한반도가 유럽과 러시아로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가 이루어진다면 한국은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다. 북한이 지경학적 우세를 적극 활용하지 않고 여전히 지정학적 접근을 시도하면 지경학적 협력과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정전략의 극치인 핵무기 개발이 북한의 발전을 20년간 묶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지정전략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대응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오늘의 세계화 추세에서 핵무기 개발과 같은 지정전략만으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너무 많은 것이다.

지정전략의 극치는 핵무기 개발

물론 최근 북한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대외행보도 그렇고 시장활성화도 그렇다. 변화는 경제를 둘러싸고 조용히 그러나 실질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북한이 황금평과 위화도를 개발하고 나선지구를 싱가포르와 같은 중계무역지로 개발하려 하는 것에는 자의든 타의든 지경학적인 전략이 깔려 있다.

철도, 도로, 항만 인프라가 깔린다는 것은 길이 열리고 물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길이 생기면 사람이 다니기 마련이고 물류가 이루어지면 경제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궁극적으로는 지경학이 지정학을 대체해야 북한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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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징이 베이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