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준금리 인상은 고양이에게 맡긴 생선"

2018-04-25 11:09:05 게재

미국 공공금융연구소장 엘런 브라운 "은행만 배불리는 연준의 금리정책" 지적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제자리걸음이고 민간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50%에 달하는 상황이지만, 변동금리가 상승하면서 채무자들이 제때에 상환을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연준이 통화긴축을 밀어붙이는 것일까. 미국의 변호사이자 '공공금융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앨런 브라운은 온라인매체 '트루스디그'(Truthdig.com) 기고에서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금융권만 배불리는 것"이라며 "은행에겐 노다지이자만 기업과 가계는 고통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준은 지난달 21일 기준금리 범위를 1.50~1.75%로 0.25%p 인상했다. 3년 동안 여섯차례 인상이다. 연준 점도표에 따르면 올해 최소 2차례 더 금리를 올릴 전망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2020년엔 3.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보(LIBOR, 런던 은행간 적용금리)는 연준 기준금리보다 더 빨리 오르고 있다. 2년여 전 0.3%에 불과했던 리보는 현재 2.3%까지 올랐다. 리보에 연동된 전 세계 자금은 3조5000억달러에 이른다. 이 중 1조2000억달러가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이다.

경제전문가들은 글로벌 부채 수준이 전세계 GDP의 3배를 넘는 233조달러에 달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글로벌 부채의 상당 부분이 연준의 은행간 단기대출 금리 또는 리보에 연동된 변동금리다. 금리가 더 오르면 대출에 기댄 정부와 기업, 가계는 점점 더 한계상황으로 몰린다. 국제통화기금(IMF)가 지난해 4월 발간한 글로벌금융안정성(GFS) 보고서에 따르면 예정대로 연준 기준금리가 오르면 미국 기업의 22%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에 몰릴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리고 미국 연방정부 부채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비해 현재 2배 이상 늘었다. 2008년 중반 9조4000억달러였던 미 연방정부 부채는 이달 21조달러를 넘어섰다. 채무 부담에 더해 연준은 그동안 사들였던 미 국채를 시장에 내놓고 있다. 연간 감축 규모는 6000억달러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매달 500억달러씩 줄여 총합 2조7000억달러를 감축시킬 것으로 전망한다. 비영리 재정·경제 부문 연구기관인 '책임있는 연방예산 위원회'(CRFB)에 따르면 미 정부의 예산적자액은 내년 1조1900억달러, 이듬해인 2020년 1조2400억달러에 달한다. 2027년엔 최소 1조7000억달러, 최대 2조1000억달러가 부족해질 전망이다. 부족액은 국채를 발행해 메워야 한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잖다.

현재 21조달러를 넘어선 연방정부 부채는 적자 추세를 고려하면 향후 10년 동안 12조달러 이상 추가된다. 연준이 현재 계획대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2027년 미 정부는 한해 이자로만 1조달러를 지급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겠다는 예산 규모와 동일하다. 고스란히 납세자들이 부담해야 할 몫이다. 이는 중산층으로부터 국채를 소유한 부유한 투자자들에게로 직접 부를 이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같은 큰 돈이 어디서 나오게 될까. 브라운 변호사는 "세금을 올리고 공공자산을 민영화하며 사회복지 서비스를 폐지한다고 해도 전액 충당하지 못할 만큼 큰 금액으로, 기준금리 인상은 그만큼 이해관계가 큰 사안"이라며 "그렇다면 연준은 왜 기준금리를 올리고 정부의 부채 부담을 늘리는 것일까. 연준의 자체 설명은 도통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앙에 기반한' 통화정책

기준금리를 설정하면서 연준은 '필립스 곡선'으로 불리는 정책 도구에 의존한다. 한 나라 경제가 완전 고용에 가까워지면 물가가 오른다는 이론이다. 전제는 '경제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예상한 노동자들이 그에 따라 임금인상을 요구하게 되면 물가가 오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립스 곡선은 인플레이션을 예산하는 데 있어 '무용지물' 아니냐는 반론이 많은 이론이다. 연준 자체 판단에서도 그렇다. 연준 전 의장이었던 재닛 옐런은 지난해 6월 14일 기자회견에서 필립스 곡선 데이터러 인플레이션 방향을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연준 이사인 라엘 브레이너드 역시 지난해 10월 12일 열린 피터슨연구소 주최 거시경제정책 컨퍼런스에서 동일한 의견을 피력했다. 미니애폴리스 연방은행 총재인 닐 카쉬카리는 지난해 6월 16일 '미디엄'(Medium)지 기고에서 "연준이 필립스 곡선에 계속 의존하는 건 '신앙심'에 기반해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격"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준의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현재 '완전 고용'의 의미는 대체로 실업률 4.7%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실업률이 그보다 아래로 하락하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 신호로 인식된다. 공식 실업률은 사실상 실업상태인 '구직단념자'를 통계에 포함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근로제 노동자를 포함한다. 그만큼 불완전한 수치다. 하지만 연준은 공식실업률을 신봉한다. 이달 기준 미국의 실업률은 4.3%다. 필립스 곡선에 따르면 연준은 통화정책 긴축에 공세적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통화정책 긴축이 인플레이션을 방지할 것이라는 개념은 또 다른 논란 많은 모델에 기반하고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란 언제 어디서나 통화정책으로 야기된 현상', '인플레이션은 재화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이 풀려 생긴 현상'이라는 인식이다. 이런 상황은 흔하다. 보통 '수요 과잉'(demand-pull) 인플레이션으로 불린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더욱 일반적인 것은 '비용 상승'(cost-push) 인플레이션이었다. 생산비용이 오르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생산비 상승에 가장 주요한 요인은 금리상승이라는 점이다. 서비스업자와 제조업자들은 공장을 짓고 설비를 갖추고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돈을 빌린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금리인상에 따라 예정된 결과는 인플레이션의 하락이 아니라 상승이다. 게다가 시장을 둔화시키고 실업을 늘린다. 즉 경기침체 상황을 몰고 온다. 기준금리 인상은 빚내기 열풍을 잠재워 '과열된' 경기를 진정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민간 대출은 늘어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킹스턴대 경제학 교수인 스티브 킨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민간부채가 GDP의 약 150% 수준에 달하면 더 이상 빚을 늘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부채를 줄여 통화공급을 축소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브라운 변호사는 "연준이 필립스 곡선에 의존하는 것은 사실을 곡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연준은 자료의 불일치 상황이 나타날 때마다 '일시적 요인'(transitory factors)이 영향을 끼쳤다고 말해왔다는 것. 미 의회 전문지 '더 힐'의 2017년 12월 기사에 따르면 연준은 2012년부터 '일시적 요인'을 들어 필립스 곡선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변명했다. 일시적 요인은 다양했다. 국제유가의 변동성, 수입물가의 하락, 달러의 강세, 에너지 가격 하락, 무선인터넷 사용료나 조제처방약 가격의 변화 등이 한 차례 이상 등장한 일시적 요인이었다. 하지만 변명에 불과했다.

연준은 또 통화정책의 효과는 뒤늦게 나타난다며, 미래에 발생할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더 힐은 "GDP는 후행지표가 아니다"라며 "연준의 정책이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년 동안 연준의 통화긴축 사이클이 진행된 동안 미국의 명목 GDP는 3%를 갓 넘었다. 하지만 그 이전 2년 동안의 GDP는 4% 이상이었다. 더 힐은 "통화정책의 방향을 가장 신뢰도 높게 지지하는 명목 GDP가 이미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위축효과를 내고 있다"며 "연준의 금리정책이 통화긴축 심화로 이어져 결국 경기침체를 부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에게만 '노다지'

필립스 곡선만 보면 인플레이션과 대출 성장세는 금리인상 추진의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금리인상을 추진할까. 그 대답은 블룸버그통신의 이달 12일자 기사에서 엿볼 수 있다.

블룸버그는 '치솟는 리보, 은행들에겐 노다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최대 규모 은행들이 올해 세전수익 측면에서 최소 10억달러의 추가 이익을 얻을 것"이라며 "리보가 오르면서 개인대출자들에 대한 금리는 크게 올랐지만 은행이 적용받는 대출 비용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리보 금리가 치솟으면서 자본시장은 얼어붙었다. 은행들끼리 주고받는 금리 역시 크게 올랐고 따라서 은행들의 수익은 급감했다. 하지만 미국 은행들은 더 이상 해외의 단기 자본시장에 의존하지 않는다. 연준의 도움으로 자금상황이 넉넉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준 기준금리가 3차례에걸쳐 0.75%p 올랐지만 대형 은행들은 자사 고객의 예금금리에 대해선 고작 0.1%p만 인상했다. 반면 변동 대출금리에 대해서는 큰 폭의 인상을 단행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간체이스의 2017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소매 대출 가운데 1220억달러가 변동금리였다. JP모간은 리보에 연동된 변동 대출금리를 지난해에만 1.19%p 올렸다. 그 덕분에 추가로 얻은 수입만 14억5000만달러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2016년 12월 기사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경우 기준금리가 1%p 상승하면 세전수익이 약 29억달러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2016년 세전수익 전체의 11.5%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미국 투자전문 매체 '시킹 알파'(Seeking Alpha)의 이달 12일자 기사에 따르면 전체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의 절반 이상은 변동금리다. 기준금리나 리보가 오르게 되면 자동적으로 금리가 변동된다. 이 매체는 "기준금리가 점진적으로 올라도 최종 소비자들이 추가로 내야 하는 이자는 크게 오르고 금융권으로 흘러들어가는 수익은 급격히 상승한다"며 "이는 결국 금융측면에서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이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기업활동과 생계를 꾸리는 비용은 높아만 간다"고 지적했다.

브라운 변호사는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은 결국 소비자물가지수를 올리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연준으로서는 추가 금리인상의 정당성을 얻게 된다. 자기예언적 상황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연준이 민간은행들의 집합체로 만들어졌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며 "진정 국민을 위한 연준이 되려면 정부가 소유하는 기구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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