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설탕, 근대의 혁명

'설탕'으로 본 한국 근현대사

2018-04-27 09:58:51 게재
이은희 지음 / 지식산업사 / 2만4000원

한국은 개항한지 130년 만에 세계적인 설탕 소비국이 되었다. 설탕 소비율은 급격하게 증가했고, 제당업은 기간산업으로서 해방 후 한국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설탕을 주제로 한국근현대사를 조명한 사례는 없었다.

저자는 설탕을 매개로 삼아 무역구조와 국가정책, 소비자 입맛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우리 식생활 양식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조명했다.

시대상황에 따라 변화한 설탕 담론 = 설탕은 시대상황에 따라 모순되게 변해 온 사회적 위상의 중심에 서있다. 민족 지역 빈부 계급 성차별 등까지 관련되어 있다. 일본 제당자본의 조선 진출 시기에 상류층 지식인들은 설탕 문명화 담론을 펼쳐나갔다. 정제당(백설탕)을 '문명·위생의 상징'이자 '영양의 보고'라며 소비를 권장했다. 이에 따라 설탕이 첨가된 과자 아이스크림 같은 식품이 유행병처럼 번졌다. 그러다 물자가 부족한 전시 통제경제정책에서는 '건강을 해치는 해로운 식품'이라고 선전했다.

해방 직전 일제가 설탕소비를 금지했음에도, 단맛을 본 입맛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해방 후에도 단맛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지 않았다. 정부는 설탕 소비로 인한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국내 제당업을 가장 먼저 육성하며 수입대체효과를 누렸다.

이후 한국 설탕산업은 미국(쿠바)중심의 시장으로 편입된다. 해방 후 정부는 한국 제당업자들에게 배타적 수입자격을 부여해준다. 정권은 환율을 우대하는 특혜까지 선물로 얹혀주며 설탕산업을 지원한다.

2010년 한국인은 1인당 평균 72.8kg의 쌀을 소비했다. 설탕은 27.38kg을 소비했다는 통계청 자료가 나왔다. 주식의 3/1 이상을 설탕으로 먹고 있는 셈이다. 설탕은 우리 식탁에서 사회적 위상이 가장 획기적으로 높아진 상품이다.

단맛은 대도시에서 시골 농산어촌까지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근대국가 제당산업과 서구 자본의 제당 투자에 힘입어 설탕 생산지는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설탕이 희소했던 지역에서 약재나 장식품으로 분류된 설탕은 음식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왕실 약재에서 다방커피 재료까지 = 열대 해상무역품인 설탕은 왕실의 약재로 분류해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다 한국은 개항을 맞으면서 급격하게 설탕의 단맛에 빠지게 된다. 전통 함밀당이 쇠락하고 근대 정제당이 발달하게 된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됐다. 일본, 영국, 중국 설탕상인들이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기술했다. 2장에서는 화교와 호떡, 일본 과자상과 왜떡에 대해 들여다본다.

이어 최상류층의 사치품으로 자리잡은 설탕의 역사도 함께 진단한다. 3장에서는 1차 세계대전과 일본 제당자본의 조선 진출에 대해 분석했다. 식민권력의 사탕무 시험재배, 대일본제당의 조선 공장설립 등 일본제과업의 조선 진출과 급격하게 변하는 서구식 식생활 전반을 들여다본다.

당시 조선의 상류층 여성들의 전통음식과 조리법, 신식요리강습회에서 설탕이 차지하는 과정을 조명했다. 대공황기 세계적 설탕 공급과잉과 식민지 조선에서 설탕의 위치도 파헤친다. 특히, '해방 후 설탕원조와 재건'에서 미군정의 설탕정책이 흥미롭다. 설탕과 다방커피의 주인공이 된 설탕. 교과서 개량 요리법에 까지 파고들었다. 설탕의 생명력은 더욱 강해졌고, 최근 요리사들의 요리법 강의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설탕에 중독된 한국사회, 수많은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 책은 설탕산업과 소비문화를 근대화 세계화 자본주의화 과정속에서 고찰한 최초의 연구보고서다.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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