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봉제골목에 다시 젊은 바람이 분다
서울시 도시재생사업 '봉제산업-청년' 상생효과 톡톡 … 주민·전문가 "현장 우선한 협치 통했다"
지난 3월 패션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최소영(25·동작구 사당동)씨는 석달째 종로구 창신동 봉제공장으로 출근한다. '대졸자가 웬 공장?'이라는 주변 시선보다 현장경험을 쌓는 길을 택했다. 공장이 쉬는 일요일에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사회적관계망을 활용해 완제품을 판매할 구상도 하고 있다.
한성대 패션디자인교육원 졸업을 앞둔 유동근(27·강동구 명일동)씨는 지난달 중순까지 인근 '낙산패션'에서 디자인과 봉제·옷본 보조로 기술을 익혔다. 컴퓨터로 옷본을 만드는 과정을 수강한 뒤에는 디자이너와 소통하는 의류제작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일할 계획이다.
종로구 창신·숭인동 봉제골목에 다시 젊은 바람이 일고 있다. 봉제업이 시들해지면서 견습생이 사라진 골목에 젊은이들이 하나둘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도시재생 선도사업을 추진하면서 동네 기반인 봉제산업과 패션업계 진출을 꿈꾸는 청년들 상생효과가 두드러진다. 30~40년 경력 장인은 자진해서 기술을 전수하고 청년들은 창신동이 다시 도약할 계기를 만들고 있다. 주민과 전문가는 현장을 우선한 서울시 협치가 빛을 발했다고 평가한다.
◆민·관·학 협업 물꼬를 트다 = 청계천 일대 평화시장 봉제공장이 1970년대 후반부터 옮겨오면서 창신·숭인동 봉제골목 역사가 시작됐다. 크고 작은 공장 3000여개가 밀집, 봉제산업 중심이자 동대문 패션산업 버팀목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그 수가 절반가량으로 줄고 견습생이 넘치던 골목에는 젊은이가 사라지고 봉제업도 시들해졌다.
경력 30년 이상 경력을 자랑하는 봉제 장인들이 새롭게 주목받게 된 계기는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진행한 '창신·숭인 도시패션 선도사업'이다. 2016년 박원순 시장이 도시재생 현장시장실을 운영하면서 지역 활성화를 위해 민·관·학 협업을 위한 협약을 맺었고 그해 겨울 서울시와 종로구 한성대학교 서울봉제산업협회가 본격 협업을 시작했다.
정욱환 한성대 패션학부 교수는 "좋은 실습현장이 있는데 학교와 교류가 없다 싶어 방법을 찾았다"고 돌이켰다. 평균연령 57세로 고령화된 봉제골목의 미래를 염려하던 차경남 서울봉제산업협회장과 통했다. 차 회장은 "창신동에 젊은이들이 들어오지 않은지 30년"이라며 "기술을 배우지 않는다고 청년들 탓을 했는데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긴 했나 반성도 했다"고 말했다.
봉제 장인과 한성대 패션학부 학생 25명이 손을 잡고 창신동 주 종목인 여성의류 제작에 도전했다. 협회에서 옷을 만들 원단과 각종 재료를 기부하고 학생들은 상업화가 가능한 패션디자인을 했다. 학생들 멘토를 자처한 봉제 장인들은 공장에서 현장 실습을 지원하고 학생들이 직접 옷본을 만들고 재봉틀을 돌렸다.
사비를 들여 옷본 제작이나 재봉틀 작업을 외부에 맡기던 학생들 만족도가 특히 높았다. 정 교수는 "봉제는 안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학생들이 '3D가 아니라 패션산업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며 "졸업을 하고 관련 업계에 진출해도 창신동과 연결고리는 계속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학생 작품으로 DDP 패션쇼 = 민간기업도 창신동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대학생 대상 KT&G 사회공헌사업인 상상유니브가 봉제 장인과 청년 협업을 전국화하자고 제안한 것. 의상 전공자와 패션모델이 꿈인 청년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진행, 지난해 9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상상패션위크'를 열었다. 디자인공모전에 전국 45개 대학 56개팀이, 모델공모전에 개인 120팀이 참여할 정도로 호응이 컸다. 예선을 통과한 10개팀과 남녀모델 36명이 봉제 장인들 도움으로 꾸민 무대는 단순한 패션쇼 이상이었다. 봉제 장인과 현장체험을 한 학생들 경험, 창신·숭인 도시재생 이야기를 시민들이 공유했다.
낙산패션에서 기술을 익힌 유동근씨는 상상패션위크 첫 대상팀이다. 학교 친구인 김민준·유강현씨와 함께 옷본 스타일링 디자인을 분담, 석달간 6개 작품을 완성했다. 유씨는 "학교에서 배운 기본을 한단계 진화해 풀어내고 조금 더 성장한 느낌"이라며 "봉제공장 사장님이 세심하게 살펴주셨고 담당 교수님도 바로 조언을 해주는 등 전문가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KT&G 상상유니브는 올해도 패션쇼와 계단벽화프로젝트 등 도시재생 사회공헌 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올해는 서울형 뉴딜일자리와 연계해 봉제공장 8곳이 청년들을 한명씩 맡아 봉제전문가로 키우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이론과 실무교육을 통해 역량있는 청년 전문가를 양성, 봉제산업 활성화와 민간 일자리 진입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장인들이 청년들 의지를 확인한 뒤 대상자를 선정하고 1주일 적응기간을 통해 기본 기술이나 안전 등 현장에 대한 이해를 쌓도록 했다. 장인들에게도 사전교육을 진행했다. 차경남 회장은 "음악·제빵 전공자, 교사 출신 등 다양한 청년들이 왔는데 공장에서는 '보기만 해도 좋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새로운 실험을 한다. 봉제 장인이 직접 강사로 나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청년들에 실무교육을 하고 관련 분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잉마스터(sewing master) 아케데미'다. 데님특화 패선봉제심화 커스텀메이드(주문제작) 3개 과정에 각각 40명씩 80시간에 걸쳐 도제식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차 회장은 "배운 학생들이 기술까지 장착하면 몇년 뒤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청년들이 어떤 상상력을 적용할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역 특성에 맞는 도시재생 효과 = "그동안 뒤에서만 일했는데 요즘은 으쓱해져요." 박미숙 다온패션 대표는 "(도시재생이) 봉제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주민과 전문가들은 협치가 제대로 작동했다고 입을 모은다. 차경남 회장은 "현장에 귀 기울여 지원하니 규모가 작아도 실질적으로 와 닿는다"며 "공장에서도 자기 일을 제쳐놓고 신명나게 참여한다"고 말했다. 정욱환 교수는 "민간·학교에 대한 이해가 동기부여가 됐다"며 "지역 특성을 찾아 도시재생과 연계, 교육 일자리 측면에서 지역을 살리자는 게 효과를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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