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모텍 증권집단소송 7년' 빛바랜 승소

2018-07-20 11:37:24 게재

유상증자 참여한 5천명, 증권사 '거짓 기재' 피해 … 1심 배상액 14억원에 그쳐

씨모텍 사건은 회사의 유상증자를 주관했던 대표 증권사에도 증권집단소송상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증권사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다. 하지만 손해배상액을 크게 제한했다는 점에서 피해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빛바랜 승소다.

씨모텍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전 모씨가 인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2009년 세간의 주목을 받은 회사다. 전씨는 이 전 대통령의 큰 형인 이상은씨의 사위로 씨모텍을 인수한 나무이쿼티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전씨가 씨모텍의 부사장을 맡으면서 씨모텍은 대통령테마주로 분류됐고 주가는 급등했다.

당시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이 벌어졌고 주범인 김 모씨는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전씨 역시 주가조작 의혹을 받았지만 검찰은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씨모텍 증권집단소송은 주가조작 사건과는 별개로 씨모텍이 2차 유상증자 과정에서 허위사실을 증권신고서와 투자설명서에 기재해 투자자들을 속인 사건이다.

유상증자에 참여한 4990명은 145억5000여만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증권사에 대해 14억5500여만원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까지 배상을 받는 증권집단소송으로 진행됐고 소송에 참여한 186명을 포함한 피해자 4990명 전원에게 배상금이 지급된다.

20일 씨모텍 사건의 판결문에 따르면 나무이쿼티는 2009년 M&A를 목적으로 설립된 자본금 5000만원 회사다. 나무이쿼티는 같은 해 씨모텍의 경영권을 3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나무이쿼티는 씨모텍의 대표이사와 주요 임원들을 나무이쿼티 인사들로 변경한 뒤 2차례에 걸친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시장에서는 나무이쿼티가 씨모텍의 인수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한다는 의심이 일었지만 회사는 이를 부인했다.

2차 증자는 2010년 9월 이사회에서 결의해 다음해 1월 286억원 규모의 납입절차가 완료됐다.

당시 대표 주관회사를 맡은 DB금융투자는 씨모텍에 대한 기업실사를 벌였다. DB금융투자는 증권신고서와 투자설명서에 나무이쿼티의 인수자금 조달과 관련해 거짓 기재를 했고 자금조달 여력이 충분하다고 믿은 투자자들은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하지만 두달 후 씨모텍은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주권매매가 정지됐고 나무이쿼티의 실소유주는 씨모텍의 자산 256억원을 임의처분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됐다. 씨모텍은 2011년 9월 상장폐지됐고 당시 자본잠식율은 244.5%였다.

◆소송허가결정에만 5년 걸려 = 투자자들은 2011년 증권관련집단소송 허가신청을 했고 2013년 1심에서 허가결정을 받았다. 항고와 재항고를 거쳐 2016년 증권관련집단소송이 최종 허가결정이 나왔다. 소송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받는 데만 5년이 걸렸다.

2016년 12월 본안소송이 제기됐지만 손해배상액 산정을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다. DB금융투자는 증권신고서 거짓 기재와 투자자들의 주식취득에 따른 손해발생과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씨모텍과 관련한 호재성 공시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증권사의 거짓 기재가 없었더라도 투자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증권신고서 등의 중요사항에 관해 거짓 기재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한 증권의 취득자가 거짓 기재가 있는 증권신고서 등의 내용을 참조했는지 여부나 그 기재내용을 신뢰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증권신고서 등의 거짓 기재는 시장가격의 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DB금융투자는 "최선의 주의 의무를 다했지만 정보 접근의 한계로 인수의견 일부에 오류가 있었다"는 점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나무이쿼티의 법인등기부등본을 확인하는 간편한 방법에 의해 차입금 220억원의 자본금 전환 여부에 관한 사실을 손쉽게 알수 있었음에도 씨모텍 담당자의 진술이나 나무이쿼티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자료를 진실이라고 믿었다"며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조사를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손해액 산정과 관련해서 DB금융투자는 주가에 영향을 미친 다른 요소들이 있는 만큼 이를 제외해 주가를 산정하는 사건연구방식(이벤트스터디)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관련해 재판부는 "주식 가격의 변동요인이 매우 다양하고 여러 요인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어느 특정 요인이 언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한 것인지를 가늠하기 극히 어렵다"며 "손해액을 일일이 증명하는 것이 극히 곤란한 경우에 손해배상액을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손해액 10% 제한, 일방적 판단 = 재판부는 증권사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손해배상액을 10%로 제한하는 일방적인 판단을 내렸다. 주요 취지는 손해 전부를 증권사에 배상시키는 것이 '손해분담의 공평'에 반한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밝힌 10% 제한의 판단근거는 △씨모텍의 주가가 전적으로 증권신고서 거짓 기재로 하락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후 감시의견 거절, 횡령·배임, 법인회생절차 개시 등) △1차 유상증자 당시에도 자본금 거짓 기재가 있었으며 △손해의 상당액은 횡령·배임행위로 발생했고 △DB금융투자는 수수료 4억8500만원 중 1억 가량만 회수했고 회수액을 초과하는 과태료와 과징금 부과처분을 받은 점 등이다.

하지만 법무법인 한누리는 "손해공평부담을 이유로 피고의 책임을 90%나 감해 준 것은 오랫동안 판결을 기다려온 피해자에게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며 "자본시장법의 입법취지를 볼 때 손해액의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투자자들의 피해액 (취득액-처분액)으로 추정하도록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시장법이 증권사에도 연대책임을 물리고 있는 만큼 피해액 상당에 해당하는 손해배상액 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향후 증권집단소송에서 증권사에 대한 배상 책임은 크게 경감될 가능성이 높다. 법무법인 한누리는 향후 항소심을 통해 증권사의 책임 부분에 대해 다투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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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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