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보호로 급선회한 금감원 | ② 즉시연금 사태 논란

금감원 vs 보험사 대립에 소비자는 더 혼란

2018-08-09 10:54:06 게재

분조위 결정에 뒤늦게 반기 든 삼성생명 … '기울어진 운동장' 방치해왔던 금융당국

즉시연금 미지급금 지급 문제로 금융감독원과 보험사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소비자 보호'에 방점을 찍은 금감원이 미지급금 지급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자 보험사가 반기를 들고 나선 양상이다.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1차적인 책임은 '불완전판매'를 한 보험사에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그러한 관행을 근절시키지 못한 금융위원회나 금감원 등 금융당국 역시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상황이다. 양쪽의 기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결국 그로 인한 피해는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분조위 결정은 1건만 해당? = 지난해 11월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는 삼성생명이 즉시연금(만기환급형) 가입자에게 덜 준 연금액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분조위는 만기환급금을 맞춰 주기 위해 매월 준비금을 뗀다는 설명이 약관에 없었기 때문에 준비금도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분조위 결정에 대해 삼성생명은 이의제기 기간을 2차례나 연장한 뒤에야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미 그 당시에 이 결정의 영향이 그만큼 막대하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뜻이다. 이후 삼성생명은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지급재원 마련'에 대한 내용을 약관에 추가하기도 했다. 약관의 부실함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몇달 후인 지난 7월 금감원이 동일 유형의 상품에 대해 일괄 지급을 권고하자 삼성생명은 분조위 결정 수용은 해당사례 1건에만 국한되는 것일 뿐 일괄 지급 여부는 법적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 관계자는 "분조위 결정 수용하기까지 삼성생명에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줬고 당시 경영진에서 동일한 유형에 대해 모두 지급하겠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손바닥 뒤집듯이 입장을 바꾸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김창호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역시 "분쟁조정 결정 사례가 나오면 그것이 표준사례가 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나머지 유사한 건들은 영향을 받게 된다"면서 "그래서 금감원이 동일한 유형에 대해 지급하라고 한 것인데 보험사가 이걸 거부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로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 돌아간다. 박기억 변호사(보험 전문)는 "금감원과 보험사의 의견이 대립되면 계약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헷갈릴 수밖에 없고 즉시연금 같은 경우 소멸시효 문제 때문에 무작정 기다릴 수만도 없어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말했다.

◆관리·감독 소홀했던 금감원도 책임 = 보험사가 '배임'과 '보험 원리'를 운운하며 분조위 결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데에 그동안 금융당국의 방조나 방치가 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보험상품의 복잡성과 특수성으로 인해 보험시장은 소비자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금융 정책을 만드는 금융위와 관리감독 실무를 맡은 금감원은 오랜 기간 동안 보험시장이라는 운동장이 기울어져 가는 것을 막지 않은 책임이 있다.

암보험금 문제와 관련해서도 보험소비자들의 불만이 쌓이고 쌓여 지난 2월부터 암환자들이 정기적으로 금감원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집회에 참가하는 이들은 "민원 해결에 앞장서야 할 금감원이 오히려 보험사와 한통속이 돼서 소비자를 더 분통 터지게 만든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금감원이 그동안 보험사의 '불완전판매'나 '보험금 삭감·거부'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했다면 이런 상황으로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은 "보험사들은 이제부터라도 소비자와의 분쟁에서 변명보다 보험사의 책무와 도리를 먼저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금감원은 감독당국으로서 권위와 신뢰를 받기 위하여 일하는 절차와 방법에 문제가 없는지 새롭게 검토하고, 보다 전문적이고 권위를 갖는 의사결정기구를 통해 소비자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제시하는 등 전문성을 갖춘 일괄구제제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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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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