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보호로 급선회한 금감원 | ① 5년간 대출금리 부당산정 중징계 못해

가산금리 문제 알고도 제재근거 없어 경징계

2018-08-08 10:57:30 게재

'조치의뢰·경영유의'로 끝내 … 올해 검사에서 적발된 은행 '고의성 적용검토' 엄단 방침

금융감독원은 올해 상반기 전체 은행의 대출금리를 검사해 부당하게 금리를 산정한 은행에 대해 고의성 여부를 판단, 엄단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삼성증권의 배당사고처럼 단순 실수라고 해도 사전 예방 체계를 갖추지 않고 방치했던 것 자체에 고의성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부당하게 높은 이자를 부과해 소비자 피해를 유발한 사례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금감원은 그동안 은행에 대한 검사 과정에서 대출금리 부당산정 사례를 적발하고도 사실상 제재 없이 넘어갔다.


8일 금감원의 제재 관련 공시를 통해 확인한 결과 최소 5개 은행에서 부당산정 사례가 적발됐는데도 부당이득 환수와 '조치의뢰·경영유의'라는 은행 자율에 맡긴 제재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출금리 부당산정과 관련해 은행 검사를 통해 꾸준히 문제점을 지적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제재 결과를 놓고 보면 실효성 없는 징계로 문제를 방치해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동안 금융감독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 결과"라며 "범죄에 가까운 대출금리 조작 문제를 그대로 내버려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5년 전 감독강화 대책 발표 = 감사원은 2012년 '금융권역별 감독실태' 감사결과 보고서를 통해 은행들의 가산금리 산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준금리가 떨어지는데도 가산금리 항목을 신설하거나 기존 항목의 금리를 인상해 수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은행은 개인의 학력에 따라 신용평가 평점을 부과, 금리를 산정했다.


금감원이 감독기구로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이 일었고 금감원은 '은행 대출금리체계에 대한 감독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은행권의 대출금리 운용을 체계적으로 확인·점검하고 금융소비자의 알권리 강화와 은행 간 건전한 금리경쟁을 유도하는 등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대출금리 결정과정과 운용체계의 적정성을 중점 검사사항으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나고 올해 상반기 금감원은 은행들의 대출금리 전반에 대한 검사를 벌였다. 지난해 코픽스 금리 산정에 오류가 발생했고 일부 은행이 가산금리를 중복 산정해 금리를 올렸다가 이를 수정하는 사례가 발생한 게 검사에 착수한 공식적인 배경이다. 검사결과 경남은행이 1만2900건(부당이득액 31억4000만원)으로 대출금리 부당산정 건수가 가장 많았고 KEB하나은행 252건(1억5800만원), 씨티은행 27건(1100만원) 등으로 나타났다. 지방은행에 대해서도 검사를 진행했다.

금감원은 "가산금리는 시장상황과 경기변동 등을 반영해 주기적으로 재산정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은행들이 수년간 가산금리를 재산정하지 않고 고정 값을 적용하거나 시장상황 변경 등 합리적 근거없이 인상한 사례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번 검사는 2013년부터 최근까지 이뤄진 대출을 대상으로 했다. 2012년 금감원이 대책을 발표한 이후 제대로 된 상시 감독과 중점 검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대출금리 문제를 막지 못한 책임은 금감원에 있다"며 "금감원이 소비자 문제에 소홀했다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대출금리 문제는 국민들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중요 사안인데 그동안 방치하다가 새 정권이 들어서고 금감원 수장이 바뀐 이후 문제가 있다고 외부에 공개했다"며 "반성없이 넘어가기 보다는 금감원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금융회사 건전성 중시, 소비자 보호는 경시 = 금감원은 은행뿐만 아니라 저축은행과 카드사, 증권사의 신용공여 등 모든 금융권 대출 영역에 대한 대출금리 체계 산정을 합리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금감원이 밝힌 금융감독혁신 중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 강화'의 핵심과제다.

이같은 방침은 문재인 정부에서 첫 금감원장으로 임명된 최흥식 전 원장이 취임(작년 9월)하면서 사실상 정해졌다. 최 전 원장은 금융감독의 궁극적인 추구방향을 '소비자보호'라고 밝혔다. 은행 대출금리 검사에 착수한 시점은 올해 2월인데, 최 전 원장 재임 시가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과 현재의 윤석헌 금감원장으로 짧은 기간 동안 수장이 두 번 교체됐지만 '소비자보호'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금감원의 한 직원은 "그동안 금감원의 업무는 금융회사의 건전성 감독에 무게 중심을 뒀다"며 "건전성 감독을 우위에 두고 소비자보호 업무를 경시해왔는데 이러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요즘 들어 '금융의 도덕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금감원의 이같은 변화는 정권 교체와 수장에 따라 달라진 만큼 '소비자보호'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금감원은 금융회사에 부담을 준다며 종합검사를 폐지했다가 3년 만에 소비자보호를 이유로 부활시켰다. 하지만 언제든지 상황이 바뀔 수 있다.

신 교수는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 조직을 분리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실행이 되지 않고 있다"며 "금감원의 소비자보호 방침이 일회성으로 끝날 수 있다는 점에서 별도의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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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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