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사망사고 절반으로 줄이자│① 위험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

'산재공화국' 매일 240여명 다치고 3명 사망

2018-08-21 10:56:21 게재

1만명 당 사망률 OECD 최고 수준, 사고은폐 가능성도 높아 … 사회적 비용 연간 20조원

#1. 지난해 8월 20일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에서 건조 중이던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안 잔유(RO) 탱크에서 폭발이 일어나 도장작업을 하던 노동자 4명이 숨졌다. 당시 수사당국과 고용노동부는 사방이 막힌 탱크 안에서 제대로 환기조차 않고 도장작업을 하다 인화 가스가 불량 방폭 등에 스며들어 스파크로 인한 폭발이 났다고 결론 내렸다.

#2. 지난해 제주도 한 음료 공장에 현장 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학생 이 모군이 사망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 군은 전공과 관련 없는 포장, 지게차 이동 업무를 맡았다. 관리 감독자와 안전 장치가 부재한 공장에서 이군은 포장 기계에 몸이 끼이는 사고를 당해 경추, 흉골, 폐가 모두 망가져 끝내 심정지로 사망했다.

#3. '노동절'이였던 지난해 5월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야드 내 7안벽에서 800t급 골리앗 크레인과 32t급 타워 크레인이 충돌해 하청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수사당국과 고용부는 사고 당시 크레인 신호수가 타워 크레인 붐대(지지대)가 올려져 있는데도 골리앗 크레인을 이동하도록 해 충돌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사고 당일 근무했던 골리앗 크레인 조정사, 타워 크레인 조정사 , 크레인 신호수의 신분과 소속 회사가 각각 달랐다.

잇단 산업현장 사고로 국민 불안감이 커지면서 근본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노동자가 사망하는 이른바 '중대사고'가 빈발하면서 국민불안감이 커졌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노동자 1만명 당 사고사망자 수 비율인 사고사망만인율(퍼밀리아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고용부 등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는 8만9848명이다. 이 중 964명이 업무상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매일 240여명이 부상을 입고 3명이 사망한 것이다.

사망사고를 업종별로 나눠보면 건설업(506명), 제조업( 209명), 서비스업 등 기타 사업(144명), 운수창고통신업( 71명) 등의 순이다. 재해유형별로는 추락(366명, 38.0%), 끼임(102명, 10.6%), 부딪힘(100명, 10.4%) 순으로 많이 발생했다.

국내 산업재해 통계는 선진국에 비해 재해율이 낮은데 반해 사고사망 비율은 월등히 높은 비정상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산재사고를 감추려고 하는 산업계 관행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사망사고가 많다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전체 재해율(0.50%)은 독일(2.33%)의 1/4 수준이다. 하지만 사고사망만인율은 우리나라(0.53)가 독일(0.15)의 3.5배 수준이다.

산업재해 특히 사망 등 중대재난 상황이 많다보니 직간접적인 경제적 손실이 약 22조원에 달한다. 이는 교통사고의 1.6배, 자연재난의 16배 수준으로 연봉 2000만원 노동자 100만명을 1년간 고용하거나 경차 150만대를 구입할 수있는 천문학적 액수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장은 "산재사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안전보건에 대한 전국민의 인식이 높아져야한다"며 "어렸을 때부터 학교교육에 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안전수칙 준수및 생활화가 될수있도록 노력해나가야한다. 산업재해는 개인과 가정 더 나아서는 국가적으로 큰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인식해야한다"고 말했다.

◆위험의 외주화도 원인 =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이미 위험사회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경제와 산업이 발달한 만큼 각종 재해 위험도 함께 증가했다는 지적이다. 산업의 발전 속도만큼 대형화 복잡화 집적화 고도화된 시설·설비와 관련한 위험도 커졌다는 것이다. 날마다 새로운 화학물질 생산이 시작되고 장비는 고속화됐으며 특히 고도성장으로 인한 시설·설비 노후화 등으로 인한 안전관련 시스템 붕괴가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제도적 뒷받침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이렇다보니 노동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국가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현대사회에서 위험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인이 조심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위험을 숨기지 않고 구조적 문제로 규정해 일상적으로 관리하고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산업재해에 대한 후진적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로 산재사고 은폐 관행과 위험의 외주화를 꼽고 있다. 실제로 이찬열 의원(바른미래당)이 지난 3월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산업재해 미보고 적발 현황'에 따르면 2014년 726건, 2015년 736건, 2016년 1338건으로 적발 건수가 매년 증가했다. 산업재해 은폐가 실제로는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또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통계 산출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사고사망만인율은 원청·상주 하청업체 0.21명, 원청·상주 및 비상주 하청업체 0.20명에 비해 원청은 0.05명 수준으로 하청 노동자의 사고사망만인율이 월등히 높았다. 이런 결과는 사회적 논란이 게속되고 있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가 통계적으로도 확인되는 대목이다.

◆국민 눈높이도 맞추지 못해 = 전문가들에 따르면 안전·보건 그리고 환경에 대한 요구는 소득 수준과 비례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 수준에서는 '환경의 일반화'가 시작된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 수준이면 '안전', 3만달러가 되면 '보건'이 일반화된다. 일반화란 국민들이 안전 보건 환경 등의 중요성에 공감하며 여건에 맞는 투자용의와 권리의식을 갖기 시작하는 단계다. 2018년 우리나라 GDP는 IMF 발표 기준으로 약 3만달러다. 하지만 국내 안전·보건 인프라는 2만달러 수준에도 못미친다는 것이 전문가들 진단이다.

한편 일부에서는 저출산시대 노동력 보전 차원에서도 산재 감소에 전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출생아 수는 35만7700명으로 2016년보다 11.9% 감소했으며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출생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박두용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저출산이 가져올 사회 문제 중 하나는 노동력 부족이며 이는 국가 유지와 경제발전에 가장 큰 장애 요인"이라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구를 늘여야 하겠지만 출산장려와 이민정책 만으로 한계가 있으므로 경제활동 인구를 잘 보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동력 손실은 국가적 위험요소이며 사고 특히 산업재해로부터 양질의 노동력을 보존하는 것은 이제 국가적 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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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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