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승수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

"수의계약으로 연구용역 남발해"

2018-08-30 11:14:50 게재

"지역구 여론조사 비용도 정책비로 활용"

"감사원도 국회 예산 못 건드려 … 문제 심각"

국회가 특수활동비 전면 폐지 방침을 밝히기로 한 데에는 여러 시민단체들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산 감시를 전문으로 하는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 하승수 공동대표는 특활비는 물론 그동안 가려져있던 국회 예산 항목들을 하나씩 하나씩 세상 앞에 내놓고 있다.

이번에는 연간 약 86억원에 달하는 국회 입법 및 정책개발비(이하 정책개발비)의 세부내용을 국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이 항목은 2005년 신설된 후부터 ‘쌈짓돈’ 논란이 일었던 예산이라 공개 요구가 거셌지만 국회는 2011년에 한 차례 공개한 것을 제외하고는 일체 ‘비공개’로 일관해 왔다. 하 공동대표는 지난해 9월 정보공개소송을 제기해 전면 공개를 이끌어냈다. 이번에 공개되는 내용은 2016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1년치로 20대 국회의원들이 임기 시작 후 첫 1년 동안 쓴 비용이다.

하승수 공동대표 제공

29일 총 2만장에 달하는 정책개발비 증빙자료를 열람한 하 대표를 국회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정책개발비는 어떤 예산인가.

말 그대로 국회의원들이 입법.정책개발을 할 때 쓰라고 주는 예산이다. 정책과 관련한 소규모 용역을 진행하거나 전문가들과의 간담회.토론회 개최 비용, 정책자료집을 내는 비용으로 주로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2005년에 처음으로 이 항목이 만들어졌는데 처음에는 연간 100억원 정도였다가 현재는 86억원 정도가 배정되고 있다. 문제는 이 예산이 정말로 입법.정책개발을 하는 비용으로 쓰이는지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가 공개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회와 소송 끝에 1년치 증빙자료를 제공받기로 했는데 총 분량이 2만여장에 달하는 등 자료가 방대해 일단 열람 후 관련 자료를 복사해서 받기로 했다.

■열람해 보니 어떤 문제가 있나.

일단 총 86억원 중 19억원 정도는 특활비나 특정업무경비로 분류가 돼 있는데 이 돈은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게 한달에 48만원씩 월정액으로 지급되고 있었다. 증빙서류를 제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또 하나의 월급이다. 1년치를 계산하면 576만원을 추가적인 연봉으로 받은 셈이다. 기존에 공개된 2011~2013년 특활비 내역에서 정책개발비 명목의 특활비가 월정액으로 지급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지만 2016년, 2017년에도 이 관행이 여전히 지속됐다는 게 이번에 확인됐다.

■특활비를 제외한 나머지 돈은 제대로 쓰이고 있나.

19억원을 제외하면 67억원 정도가 남는데 이 중 일부 액수가 소규모 정책연구용역비로 쓰이고 있다. 정책연구용역비 총액은 아직 집계를 하지 못했지만 건수는 270건 정도다. 전문가들에게 정책 관련 용역을 맡기면서 500만원 이하의 용역비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쓰이는데 모두 수의계약 방식이다.

이 비용이 제대로 쓰였는지는 좀 더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연구 제목을 보면 국회의원들이 연구용역을 줄 내용인지 의문이 드는 게 여러 개 있었다. 예를 들어 개헌과 관련한 권력구조에 관한 연구용역을 여러 의원실에서 발주했는데 헌법개정에서 권력구조 문제는 너무 일반적인 주제인데다 국회 개헌특위나 국회의장 직속의 자문기구에서 내로라 하는 헌법학자들이 보고서를 이미 많이 낸 주제다. 용역을 받아간 사람이나 단체 중에서도 과연 정책연구 용역을 주는 게 적절한가 싶은 부분도 있었는데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

■국회의원들의 정책연구 용역보고서의 표절 등을 지적한 걸로 안다.

올해 초 ‘뉴스타파’와 함께 국회도서관에 공개돼 있는 정책연구 용역보고서를 전수조사해 표절 보고서가 상당수 된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그때는 공개된 보고서만 대상으로 했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비공개 처리됐던 용역보고서의 목록과 목차, 용역보고서 작성자 등을 모두 확인했으니 실제 보고서 내용을 모두 확인해서 과연 국민 세금으로 용역비를 줄 만한 내용이었는지 확인할 생각이다.

소송에서 국회가 끝까지 공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부분이 바로 소규모 정책연구용역비 관련 내용이었다. 항소심에서도 정책연구용역을 누구에게 줬는지 실명을 공개할 수 없다며 끝까지 우겼다.

■국회는 어떤 논리로 정책연구 용역 내용의 비공개를 주장했나.

이름을 다 공개하면 누가 국회의원들에게 연구용역을 받으려고 하겠느냐는 주장을 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여서 재판장도 ‘세금으로 용역을 받아 연구한 내용이 정책에 반영되면 연구자 입장에선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국회의원들이 정책연구용역비를 활용해서 받은 연구보고서를 다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국민 돈으로 정책연구를 했으니 다 공개하는 게 맞다.

■끝까지 숨기려고 했던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모든 보고서를 받아서 정밀하게 분석을 해봐야 한다. 다만 보고서 제목과 목차만 봐도 일부 문제가 보이는 지점이 있다. 정책연구용역이라고 해놓고서는 실제로는 지역구 주민 상대로 여론조사를 하는 데 돈을 쓰기도 했더라. 국회의원들은 이것도 지역구 정책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과연 국민들 눈높이에서도 그렇게 보일지 의문이다. 입법활동을 하라고 돈을 줬더니 자기 다음 선거에 필요한 내용을 조사한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여러 건 있었다.

■그 외에 또 어떤 비용으로 많이 쓰였나. 눈에 띄는 부분은.

토론회나 세미나, 간담회 건수가 많았다. 영수증 분량이 워낙 많은데 특이사항 있는 것들을 따로 뽑아서 분석할 예정이다.

그 외에 정책자료 발간비도 입법 및 정책개발비에 포함돼 있는데 국회의원실에서 정책을 냈을 때 자료집 형태로 내서 돌리는 것을 말한다. 세부내용을 보니 한 건에 2000만원씩 쓴 사례 등은 부풀리기 의혹이 있다. 시기적으로는 연말에 많이 몰아서 쓰는 경향이 보인다.

■결국 정책개발비가 엉망으로 쓰여지고 있는 거 아닌가.

분석을 해봐야겠지만 정책 및 입법개발비 역시 특활비처럼 국회의원들의 또 하나의 쌈짓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가 너무 곪아 있다는 점도 다시 한 번 느꼈다. 국회가 많은 예산을 쓰는데 사실상 감시의 사각지대다. 감사원도 국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 제대로 감시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국회를 감시할 수 있는 곳은 시민사회뿐인데 그러려면 정보가 많이 공개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으니 문제가 곪을 수밖에 없는 거다. 국회가 해체 수준의 혁신을 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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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박준규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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