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가보지 않은 여행기
대가들의 작품 속 풍경을 거닐다
바야흐로 해외여행 전성시대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인천국제공항은 매일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으로 붐빈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하면서 어떤 이는 새로운 깨달음과 활력을 얻고, 또 어떤 이는 지적 체험의 증가에 충족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느낀 감동을 여행기로 남긴다.
하지만 여행을 가지 않고 쓴 여행기가 있다면? 실제 그런 책이 나왔다. 언론인이자 칼럼리스트인 정숭호씨의 '가보지 않은 여행기'가 그것. 저자는 몸으로 체험하는 대신 상상의 날개를 펼쳐 오대양 육대주를 여행한다.
물론 '가보지 않은 여행'에도 엄연히 가이드가 있다. 저자는 괴테나 빅토르 위고, 톨스토이, 니코스 카잔차키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오르한 파묵 등 고전과 현대문학 거장들의 작품을 지도와 나침판 삼아 세계로 떠난다. 말하자면 이 책은 '여행기를 가장한 독후감'인 셈이다.
저자는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다가 문득 '두명의 사공이 젓는 곤돌라를 타고 베니스 운하 건너 주데카'로 떠난다. 200년 전 괴테가 갔던 길이다.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을 보며 터키 보스포루스 해협 동쪽 아시아지역에 있는 아나돌루히사르의 오래된 저택을 찾는다.
그곳에서 저자는 파묵 작품의 섹스묘사에서도 열락보다는 비애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지를 따진다.
파묵이 이스탄불에서도 가장 번화가인 탁심 광장에 진짜 '순수 박물관'을 열었다는 정보는 덤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안드레이 공작의 눈에 비친 아우스터리츠의 하늘을 생각하며, 1980년 5월 서울의 봄 시위를 취재하다가 경찰의 곤봉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을 당시 저자가 쳐다봤던 서울의 하늘을 떠올린다.
여행은 물론 몸으로 체험하고 가슴으로 감동하는 행위다. 하지만 저자처럼 문학작품 속의 배경을 여행지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는 것도 색다른 체험일 것 같다.
상상 속의 여행이라고 얕보지 말자. 20세기 최고의 발견이라고 격찬해마지 않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사고실험을 통해 탄생하지 않았나.
저자가 책 말미에 써놓았듯 '구글지도와 뉴욕타임즈 등 언론,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쓰고 올려놓은 글과 사진들의 도움'을 받으면 가보지 않은 여행도 충분히 감동스러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