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스카이캐슬에서 나와야

2019-01-23 08:55:37 게재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위원장

요즘 학력의 대물림과 입시 코디네이터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높은 시청률 속에 방영되고 있다. 청년의 학력과 스펙은 부모의 소득수준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다. 우리 사회에 소득격차와 양극화는 곪을 대로 곪아 있다.

촛불혁명이후 사회 양극화와 격차 해소는 노동조합운동의 최대 화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이마저도 대기업이 다수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노동자와 국민들은 보수언론과 이에 편승한 정치인이 ‘귀족노조’라고 딱지를 붙여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러한 상황은 보수기득권 집단이 사회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통한 일자리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공격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사회양극화 해소가 최대 과제

다른 한편 개별기업 중심의 교섭과 투쟁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관행처럼 굳어졌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투쟁력 있는 노조에 가입된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 사이에 격차가 벌어졌다. 이 같은 개별기업 노조의 한계를 넘고자 산업별노조가 탄생했다. 그러나 산별노조를 결성할 수는 있었지만 산별교섭은 정착되지 못했고, 노조의 산업정책 참여를 가로막는 장벽은 높았다.

보건의료노조는 1998년 우리나라 최초로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했다. 산별노조 건설 이후 90만 보건의료노동자들의 권리향상과 함께 노조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환자와 국민을 대상으로 돈벌이를 추구하는 의료영리화 정책을 반대해왔고, 간병비 부담을 덜기 위해 보호자가 필요없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진주의료원 폐원 반대와 공공의료 확충, 의료사고 없는 안전한 병원 만들기, 최근에는 제주영리병원 허가 철회투쟁을 펼쳐왔다. 사회적 책무를 다하려는 보건의료노조의 이 같은 활동은 국민적 공감과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보건의료노조의 이같은 활동은 종종 벽에 부딪쳤다. 노동조건 향상과 국민건강권 실현이라는 사회적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의료양극화와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을 책임있게 수행하려면 정책과 제도와 예산과 법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했다. 정부까지 포함한 노정교섭과 사회적 대화 채널이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개별 기업 차원의 노사교섭으로 정책과 제도와 예산과 법에 접근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사회양극화 해소라는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 수행을 위해서는 초기업교섭과 사회적 대화가 필수요건이다. 노사정 3자가 공동의 의제를 올려놓고 정책과 제도, 예산과 법이라는 수단을 동원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기업을 넘어서는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마련하지 않으면서 노조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거부하고 ‘밖에서의’ 투쟁만 강조하는 것 그 어느 것도 사회양극화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업장 담장을 넘어 사회대개혁으로

보수 기득권집단은 ‘스카이캐슬’에 사는 고학력자들을 동원해 각종 사회개혁 의제를 교묘히 비틀어버린다. 보건의료분야에서는 건강증진을 빌미로 보건의료분야의 각종 규제를 풀려고 한다. 심지어는 미세먼지를 줄인다며 ‘탈원전 반대’를 주창하기도 한다. 스카이캐슬의 고학력자들이 여기에 동원되고 노동자와 서민들의 불안과 피해의식은 교묘하게 이용당한다. 이렇게 사회적 대화의 링 밖에서 사회양극화는 세습되고 재생산된다.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의제들을 사회적 대화의 링 위로 올려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메아리 없는 외침은 공허하다. 모두가 볼 수 있는 투명한 곳에서 공정한 대화가 이뤄져야 경제 각 주체들의 책임있는 결단과 국민적 평가도 가능하다. 노사정이 각자의 ‘스카이캐슬’에서 걸어 나와 사회적 대화의 링에 올라야 한다. 산별교섭과 함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그 열린 공간이 될 수 있다. 민주노총 올해 새 슬로건이 눈에 띈다. ‘사업장 담장을 넘어 사회대개혁으로’ 1월 28일 대의원대회가 그 출발점이자 결의의 장이 되길 기대해본다.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