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수거중단 사태, 벌써 잊었나 ②

"현실무시 재활용등급 분류 더이상 안돼"

2019-01-31 11:10:52 게재

초읽기 들어간 포장재 재질구조 개선 … "시민에게 책임 떠넘기는 제도 그만"

지난해 4월 '재활용 쓰레기 수거중단' 사태 이후 또다시 재활용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특히 페트병 재활용 업계가 심상치 않다. 유색 페트병 문제부터 재활용 등급 개정 논란까지 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무엇이 문제일까. 내일신문은 3회에 걸쳐 재활용 쓰레기 수거중단 이후 달라진 시장 상황과 대안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금속 스프링 펌프가 달린, 화려한 색상의 샴푸통.' '몸체에 제품명 등 라벨이 인쇄된 페트병.'

이들 제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재활용이 어려워 그냥 쓰레기로 버려진다는 점이다. 28일 만난 페트병 재활용업체 RM 관계자는 "페트병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라벨 비중"이라며 "페트병과 라벨이 쉽게 분리될 수 있도록 비중 1미만 재질의 라벨을 쓰는 게 업계 입장에서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28일 경기도 화성의 한 페트병 재활용업체에 들어온 폐페트병들. 라벨이 붙어 있는 페트병은 재활용이 힘들다.


페트병 재활용 과정은 업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크게 3단계로 이뤄진다. △페트병 잘게 부수기 △물 속에 잘게 잘라진 조각들을 넣어 라벨 등을 띄우기 △ 세척 공정을 거쳐 접착제를 포함한 이물질 제거 등이다. 여기서 핵심은 2번째 단계다. 국내에 시판되는 페트병은 비중이 1.4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의 비중은 1인데, 이보다 무거우면 가라앉고 가벼우면 물에 뜬다. 이 특성을 이용해 재활용이 불가능한 비중 라벨이나 뚜껑 조각들(비중 1미만)을 재활용이 가능한 페트병 본체와 분리하는 것이다.

물보다 가벼운 라벨 띄워 페트병과 분리

환경부는 지난해 5월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재활용이 어려운 페트병 등을 생산하는 경우 재활용비용(EPR 분담금)을 차등 부과하는 등 아예 처음부터 재활용이 쉬운 제품을 만들도록 제도를 바꿔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한 방안으로 17일 '포장재 재질·구조개선 등에 관한 기준' 개정 고시(안)을 행정 예고한 상태다.

고시안의 주요 내용은 △재활용이 우수한 구조를 보다 세분화 △페트병에 라벨 부착시 사용하는 접착제의 명칭(열알칼리성 분리 접착제) 명확화 △출고량이 급증하고 있는 G-PET(글리콜변성 PET 수지 재질)를 재활용이 어려운 재질·구조에 추가 등이다. 12월부터 시행되는 재활용이 가능한 정도를 기준으로 포장재 등급을 평가하는 '등급 평가 의무화'와 '결과 표시 의무화' 등이 시행될 때 이 고시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페트병에 붙은 라벨과 본체를 떼어내는 공정. 라벨이 잘 떼어지지 않을 수록 재활용 되지 못하고 쓰레기로 버려지게 되는 물량이 많아진다.

환경부는 포장재 재질별로 기능과 형태에 따라 재활용이 얼마나 쉬운지 등급을 구분해 놓았다. 이 기준에 따라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을 생산한 기업은 분담금을 더 내도록 하는 등 제재를 하게 된다. 포장재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재활용이 용이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생산자들이 재질구조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도록 한 제도다. 때문에 업체들 입장에서는 재활용 등급 기준 설정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페트병 재활용업체 새롬 ENG 관계자는 "국내 재활용업체들은 대부분 비중 분리 방식으로 페트병 본체와 라벨을 떼어 낸다"며 "만약 페트병 본체와 라벨 비중이 동일하게 되면 재활용하기가 힘들어진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또 "라벨과 페트병 본체 비중이 동일한 수준의 제품들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 사업장의 경우 연간 1500t이상은 폐기물로 그냥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손실이 많아지면 사실상 사업을 하지 말라는 소리"라고 덧붙였다. 새롬ENG의 폐페트병 재활용량은 연간 2만t이다.


"절취선 표시된 비중 1미만 라벨에 인센티브"

RM 관계자는 "일부 페트병 라벨 제조업체들은 비중 1을 넘더라도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분리하기 쉽도록 절취선을 넣으면 재활용 1등급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실제 재활용 수거 현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며 "이 체제를 인정하게 되면 당연히 재활용업체들은 제대로 분리수거가 되지 않은 쓰레기들을 받지 않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쓰레기 수거업체들은 준법 수거를 강조, 지난해 4월 재활용 쓰레기 수거 중단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비중 1 이상인 라벨은 분리되지 않고 페트병 몸체와 함께 물에 가라앉아 재활용이 어렵게 된다. 이 라벨을 활용한 제품이 재활용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시민들이 집에서 쓰레기를 버릴 때 반드시 페트병 라벨을 제거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네 현실은 제대로 된 분리배출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3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페트병 재질·구조 기준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3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페트병 재질·구조 기준 관련 공청회'에 참석한 서아론 녹색소비자연대 부장은 "(소비자들을 폄훼하는 게 아니라)시민들이 라벨을 제거한 뒤 페트병을 버려야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안지 얼마 안됐다"며 "지난해 4월 일어난 재활용 쓰레기 수거 중단 사태 이후 그 중요성을 체감했고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 부장은 "습관을 1년내에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며 "쓰레기 수거 업무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 역시 여러 제도적 정비를 할 시간이 필요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자원순환사회연대는 24일 성명서를 통해 "페트병 라벨 비중 1미만 사용 정책은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하는 방향에서 상당히 바람직하다"며 "절취선이 표시된 라벨 비중 1미만 제품이 확대 생산되도록 생산기업에 예산 등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산자책임재활용 제도(EPR) = 환경보전은 물론 자원을 순환시켜 재활용산업 발전도 추구하는 게 주요 목적. 생산자에게 제품이나 포장재의 폐기물에 대하여 재활용의무를 부여한다. 환경보전과 재활용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생산자는 재활용이 잘되도록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들도 분리배출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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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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