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세율 91%였던 1955년 미국에서는…

2019-02-07 11:47:06 게재

블룸버그통신

미 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이 소득세 최고 한계세율을 70%로 높이자고 제안하면서 찬반 논란이 뜨겁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고율의 세금이 기업가 정신을 죽이고 경제를 위축시킬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반면 찬성측에서는 1950년대 최고 한계세율이 90%를 넘었지만 당시 미국 경제는 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고 반박하고 있다(내일신문 1월 30~31일 '29세 여성, 진보엔 희망 보수엔 악몽', '코르테즈 의원의 테일 리스크 현실화할까' 참조).

이런 가운데 블룸버그통신이 한계세율이 91%에 달했던 1955년 상황을 되짚어 관심을 끌었다. 미국 조세재단의 기록에 따르면 1955년 한해 1만6000달러(현재가치 15만달러)를 버는 사람의 소득세 한계세율은 50%였다. 5만달러(현재가치 47만달러)를 버는 사람은 75%의 한계세율을 적용받았다. 20만달러(현재가치 190만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의 한계세율은 91%였다. 즉 20만달러를 넘는 돈에 대해서는 1달러당 91센트를 연방정부가 세금으로 걷었다는 의미다. 결혼한 부부의 경우 소득이 40만달러를 넘으면 91%의 한계세율을 적용받았다. 1955년 100만달러를 벌었던 사람은 이것저것 합해 한해 80만달러 넘는 돈을 세금으로 납부했다.

적어도 이론상으론 그랬다. 부자와 이들이 고용한 고액 연봉의 회계사들은 힘을 합쳐 세금을 낮추려고 애썼다. 이들은 높은 한계세율을 연방정부의 강제몰수라고 여겼다. 따라서 세법상 허점을 찾았다. 의회 조사국에 따르면 50년대 미국의 0.01%에 속한 부자들이 자신의 소득에 따라 낸 세금은 한계세율 90%가 아니라 45%에 가까웠다.

당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사람들은 지금처럼 기업의 경영진이나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이 아니었다. 영화배우와 가수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1958년 US스틸 CEO의 한해 소득은 약 30만달러였다. 반면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연소득은 400만달러(현재가치 3500만달러)에 육박했다. 시나트라를 포함해 영화배우 밥 호프와 가수 겸 배우 빙 크로스비,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배우 조안 크로포드, 헨리 폰다, 험프리 보가트 등 연예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절세였다.

1986년 세제개혁법이 통과되기 전의 세법은 각종 허점으로 가득했다. 허점을 활용한 방법 중 하나는 임대용 부동산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1954년 의회는 소득을 발생시키는 부동산에 대해 '가속 감가상각'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부자들은 매년 일정 비율로 자산의 가치를 줄여 소득세를 공제받았다. 하지만 시장에서 거래되는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올라 '꿩 먹고 알 먹기'였다. 이같은 세제 우대조치는 수백만달러를 버는 연예인뿐 아니라 5만~6만달러를 버는 변호사와 의사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또 다른 절세 방법은 한해 소득을 여러 해에 거쳐 분할 수령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57년 영화배우 윌리엄 홀든은 '콰이강의 다리' 제작사인 컬럼비아 픽처스로부터 총이익의 10%를 출연료로 받기로 했다. 콰이강의 다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총이익이 2700만달러(현재가치 2억4100만달러)를 넘었다. 따라서 홀든이 가져갈 몫은 270만달러였다. 하지만 세금을 아끼기 위해 그는 한해 5만달러씩만 수령했다.

외관상 제작사에 유리한 거래로 보일 수 있다. 한해 5만달러씩 총액 270만달러를 지급하는 데 54년이 걸린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제작사의 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하지만 홀든의 입장에선 반대였다. 270만달러를 일시불로 받을 경우 그의 호주머니로 들어오는 돈은 30만달러가 채 안됐을 것이다. 91% 한계세율 때문이다. 한해 5만달러씩 받는 편이 홀든에겐 오히려 유리했다.

미국의 고액 수입 연예인들이 애용한 또 다른 절세 방법이 있었다. '석유고갈 소득공제'와 이른바 '거품회사'(collapsible corporation)다.

석유고갈 소득공제는 1926년 의회가 통과시켰다. 석유시추로 벌어들인 소득을 27.5% 감면하는 내용이다. 이는 미 역사상 가장 커다란 세법상 허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가장 먼저 간파한 연예인은 영화배우인 크로스비와 호프였다. 이들은 텍사스주의 한 석유기업가에 각각 4만달러를 투자해 석유회사 지분 25%를 매입했다. 투자한 4만달러는 500만달러의 수익으로 돌아왔다. 그중 27.5%인 137만5000달러는 소득에서 제외돼 고율 세금을 피할 수 있었다. 이들의 절세 방법은 곧 헐리우드로 전파됐다. '석유기업이 필요한 자본은 헐리우드에서 댄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거품회사는 헐리우드 스타들이 애용한 또 다른 절세 방법이었다. 고액 수입 배우들은 영화를 찍을 때 거품처럼 곧 사라질 임시기업을 설립했다. 출연료 등은 회사가 대신 받았다. 소득세 한계세율은 90%였지만 법인세율은 50%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완성돼 정산이 끝나면 회사는 문을 닫았다. 이 방법의 선구자 역시 배우 크로스비였다. 그는 1937년 첫 번째 거품회사를 차렸다. 시나트라는 영국의 지명을 회사명으로 사용했다. 에식스와 브리스틀, 켄트, 캔터베리 등이 그가 만든 거품회사였다.

일부 스타급 배우들은 자신의 거품회사가 영화사와 주식을 매매하는 것처럼 꾸며 세금을 덜 내기도 했다. 자본이득에 따른 세율은 최대치가 2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미국 국세청(IRS)은 영화배우 그루초 막스와 영화사를 고발했다. NBC방송에서 '두말하면 잔소리'(You Bet Your Life)라는 쇼를 진행하면서 100만달러를 받았는데, 수입으로 잡지 않고 주식거래에 따른 자본이득으로 계상해 탈세했다는 혐의였다. 하지만 법원은 그루초의 손을 들어줬다.

1950년대 중반 의회는 거품회사를 금지하기 위해 관련법을 제정했다. 기업의 수익 중 최소 25%는 동종이 아닌 다른 산업에서 발생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거품기업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기에도 허점이 있었다. 헐리우드 스타들은 영화 회사와 석유 회사를 합병해 하나의 회사로 만들어 법망을 피했다.

블룸버그는 "한계세율이 최고조에 달했던 50년대와 60년대 미국 경제가 전성기였던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고율 세금이 경제적 행동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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