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한국형 에꼴42' 문 연다
SW분야 최고수준 인재양성
무교수·무교재, 학비도 무료
서울시-과기부 공동설립
교사도 교재도 없다. 문제 한 장만 주어진다. 문제 푸는 방법부터 해답 구하기까지 스스로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학비도 없다. 학력도 묻지 않는다. 나이도 30세만 넘지 않으면 된다. 한달간 치르는 입학 시험은 논리력과 끈기만을 테스트한다.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굴지의 IT 대기업들이 앞다퉈 모셔간다. 재학 기간이 자유로워 조기에 과정을 마친 뒤 창업에 뛰어든 학생도 상당수다. 매년 1000명 모집에 7만명 이상이 지원한다. 2017년 전 세계 IT기술학교 중 3위에 선정됐다. 프랑스 최대 개발자 대회 '코딩게임' 참석자 1만3000명 중 최상위 5명이 이곳에서 배출됐다. 혁신적 교육방식과 환경으로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곳, 프랑스 파리 북서쪽 17구에 위치한 '에꼴42' 이야기다.
서울에 한국형 에꼴42를 표방한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 학교가 문을 연다. 정부가 주창하는 혁신창업의 주역은 물론 기업들이 애타게 찾는 소프트웨어 최고 전문가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서울시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손을 잡았다. 시와 과기부는 소프트웨어 인재를 키우는 3무(무교수·무교재·무학비) 혁신학교인 이노베이션 아카데미(가칭)를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지털혁신파크에 설립하는데 합의하고 12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에꼴42는 2013년 프랑스 파리에 세워진 혁신적 소프트웨어 교육 기관이다. 학생 주도적 학습과 게임이론을 접목한 교육방식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까지 서울시와 과기부는 이와 유사한 교육기관을 설립하기 위해 각자 움직였다. 하지만 서로의 계획을 알게된 두 기관은 학교 설립 시기를 당기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격적으로 힘을 합쳤다. 과기부는 행정·재정적 지원을 책임지고 시는 개포 디지털파크 내 옛 일본인학교를 공간으로 제공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서울시가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혁신창업의 핵심은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급변하는 과학기술시대 세계적 경쟁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그에 걸맞은 인재 공급이 필수라는 것이다. 소프트웨어교육 전문기관 '코드스쿼드'를 운영하는 김 정 대표는 "우리나라엔 지금 시대가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 인재를 양성하는 전문기관이 사실상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4차산업혁명 얘기는 무성하지만 정작 이를 감당할 인재 양성은 누구도 하고 있지 않던 것"이라며 "현 공교육 시스템에선 이같은 인재 양성이 어렵기 때문에 이노베이션 아카데미가 자리잡으면 독보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토양에서 무교수·무교재 등 혁신교육 방식이 제대로 적용될지 우려도 있다. 특히 100% 민간 자본으로 설립된 프랑스 에꼴42와 달리 한국은 공공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설립추진 TF에서 활동한 한 관계자는 "교육과 운영을 기존 방식과 완전히 달리해야 하는 만큼 예산·인프라 구축이 끝나면 전적으로 운영주체에게 맡겨야 할 것"이라면서 "개교 후 5년 이내에 얼마나 안착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설립추진단은 에꼴42의 교육방식, 철학을 최대한 도입하기 위해 프랑스 에꼴 측과 콘텐츠 등 각종 협력 사항을 논의 중이다. 에꼴42는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에 분교를 운영 중이기도 하다. 추진단은 초대 학장 모집에 공을 들이고 있다. 추진단 관계자는 "명망가가 아닌 한국 소프트웨어 발전을 위해 온 힘을 쏟을 분을 국적을 막론하고 모시려 한다"고 말했다.
추진단은 올 9월 개교를 목표로 학교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모집 인원은 500명이다. 한국형 에꼴42는 기존 학교 수업과 병행이 불가능하다. 2, 3년 과정을 마치면 국내를 넘어 세계 최상위급 코딩 전문가로 만든다는 목표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과정에 몰입할 학생만 입학이 가능하다. 김 대표는 "글로벌 IT업계에선 웬만한 일반대학 학위보다 에꼴42 출신인 것이 더 큰 스펙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에꼴 측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더이상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은 의미가 없다. 암기력이 아닌 논리력과 문제해결 눙력이 창의력 발휘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에꼴42 실리콘밸리 분교 1기생인 장상현(28)씨는 "철저히 기본을 강조하고 창의성을 끝까지 끄집어내는 교육방식 덕분에 개발자가 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며 "한국형 에꼴42도 개발자의 요람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