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금리 인하' 걸림돌, 불법사금융 칼댄다

2019-02-15 11:06:35 게재

최종구, 금융당국 역할강조 … 정부가 채무자 대신해 불법대부업자 대응, 상반기 대책발표

금융당국이 법정 최고금리를 20%로 인하하는 데 최대 걸림돌인 불법사금융 척결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문재인정부는 법정최고금리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제도권 금융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서민들이 불법사금융으로 몰리는 부작용을 막지 못하고 있다.

14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서울 성균관대에서 열린 '2019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특별세션에 기조 연설자로 나와 "현재 불법사금융은 민사와 형사절차를 통해 사법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며 "금융당국은 불법사금융 피해를 본 채무자로부터 신고를 받아 검찰에 고발하는 소극적 역할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2019년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가계부채를 중심으로 한 부채의 인식과 대응'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제공


최 위원장은 "현재 금융감독당국의 감독영역은 금융기관에 한정돼 있어 불법사금융업자에 대한 조사와 조치는 할 수가 없다"며 "금융당국을 포함해 정부가 불법사금융 피해자 보호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정 최고금리는 2014년 34.9%에서 2016년 27.9%, 지난해 24%로 인하됐다.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에 미등록대부(불법대부업체) 신고건수는 2015년 1220건에서 2016년 2306건으로 89% 급증했으며 2017년에는 2819건으로 전년대비 22.2% 증가했다.

법정 최고금리가 낮아지면서 대부업체들도 신용등급이 8~10등급인 저신용자들에 대한 신용대출을 꺼리고 있다. 특히 영세 대부업자들은 폐업 후 법정최고금리 보다 높은 금리를 받기 위해 불법대부업체로 전환하는 곳이 상당히 많다는 게 한국대부금융협회의 분석이다.

최 위원장은 "긍정적 효과가 크더라도 서민들을 불법사금융으로 내몰 우려가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정책당국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예를 들어 법정 최고금리를 언제 어느 수준까지 낮출 수 있을지, 솔직히 현재로서 확신에 찬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금리인하의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서민들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최 위원장은 "불법사금융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대출모집·광고절차에서부터 불법사금융업자에 대한 처벌강화까지 다방면에 걸친 대책을 동시에 마련·추진해야할 것"이라며 "여러 부처·기관에 걸쳐 있는 주제인만큼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가능한 한 상반기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법적 권한을 확대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최 위원장이 내놓은 대안 중 하나는 '채무자대리인제도' 활용이다. 채무자대리인제도는 채무자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해 채권추심에 대응하게 만든 제도로 채권추심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채무자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이를 채권추심자에게 서면으로 통지하면 채권추심자는 채무자를 방문하거나 채무자에게 말 글 음향 영상 또는 물건을 도달하게 하는 것이 금지된다. 이를 위반하면 채권추심자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채무자대리인제도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채권자인 경우는 해당되지 않고 대부업체와 불법대부업체 등에 적용된다. 하지만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자가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제도가 활성화되지는 않고 있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서민들을 돕기 위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채무자대리인제도는 불법사금융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대부업체 등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채권추심에 대응하고 있다"며 "금융당국은 불법사금융업자를 상대로 서민들을 위해 보호막을 쳐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금융당국이 피해자의 대리인으로 불법사금융업자를 직접 상대해 구제 절차를 진행할 경우 피해자에 대한 즉각적인 보호가 가능할 것이며 불법사금융업자의 경각심도 유발할 수 있다"며 "불법사금융 억제에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채무자대리인제도 도입에 방점이 있는 게 아니라 금융당국이 불법사금융에 대한 대항력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예를 든 것으로 일종의 제안"이라며 "검찰과 경찰 등 사법기관과도 협의를 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불법사금융 근절 방안을 마련해 시행한 뒤에 법정 최고금리를 2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날 한국경제학회와 공동으로 특별세션을 주최한 서민금융연구원 조성목 원장은 "정부의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이 그간 공급자중심에서 수요자중심으로 관점을 전환하고 획일적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상담기능을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고무적으로 판단됩된다"며 "대두되는 현상에 단편적으로 대처하는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선도적이고 실질적으로 서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특별세션은 '한국경제에서 서민금융의 역할과 미래'를 주제로 진행됐으며 무이자 대출을 실행하는 '더불어사는 사람들'(이창호 대표) 등 서민금융 사례가 발표됐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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