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유엔에 스쿨미투 알린 양지혜 활동가

“학내 성폭력 이야기하니 국가는 뭘 하느냐 묻더라”

2019-02-18 11:27:00 게재

지난 7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사전심의 참여

"정부대처 미흡 … 국제 모니터링 이뤄졌으면"

시작은 지난해 11월 유엔에 제출한 13장짜리 보고서였다. 2018년 4월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의 ‘창문미투’ 이후 전국 70여개 학교에서 학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간절한 외침들이 잇달아 터져나왔지만 정부의 침묵은 길었다. 정부의 침묵이 지속되면서 학교에선 고발자를 색출하거나 조롱하는 2차 가해가 심해졌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양지혜 활동가(22)는 이렇게 스쿨미투 이슈가 사장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를 채근하고 움직일 수 있는 그 무엇이라도 얻어내기 위해 국제사회에 한국의 스쿨미투를 알리기로 했다. ‘#스쿨미투에 관한 NGO보고서’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한 이유다.

보고서를 받아 본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다. 초청을 받아 유엔유럽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도 다녀왔다. 12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양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좌)양지혜 활동가가 유엔에서 활동하는 아동인권 등의 전문가들에게 한국 스쿨미투 운동의 배경, 과정, 현황 등을 설명하고 있다. (우) 양 활동가가 스위스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현수막을 들어올리고 있는 모습. 사진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제공


“보고서에 한국의 스쿨미투가 어떻게 시작됐고, 현황이 어떤지, 정부가 침묵하고 있는 현실을 담았어요. 그 때 기준으로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온 고발 관련 글만 해도 130만 건이 넘은 상황이었거든요. ‘여자는 애 낳는 기계다’ ‘내 무릎에 앉으면 수행평가 만점이다’ 같은 교사들의 발언이나, 학생 무릎에 누워 귀를 파달라고 한다든지 술 마실 때 시중을 들라고 교사들이 요구하는 사례 등도 담겼습니다.”

유엔의 초청은 뜻밖이었다고 한다. 국제사회에 한국 스쿨미투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과연 정말로 제네바로 날아갈 수 있을지, 하다못해 여비를 마련할 수 있을지부터 막막했다. 그래도 꼭 가야 한다는 생각에 소셜펀딩을 통해 여비를 모았다. 5000여명의 시민들이 조금씩 보태준 덕에 지난 4일 제네바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9일까지 이어진 4박6일간의 제네바 일정에는 양 활동가와 스쿨미투를 당사자 입장에서 이야기할 고등학교 3학년 청소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장보람 변호사 등이 동행했다. 이들은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사전심의와 아동미팅에 참석했다. 전문가 미팅도 진행했다.

“전문가 미팅에서 아동.여성인권 등 국제단체 활동가분들 만났는데, 전세계적으로 학교 내 성폭력이 벌어지고 있지만 한국의 스쿨미투 운동은 아동청소년 당사자들이 사회운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귀감이 되고 본보기가 된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힘이 됐어요. 스쿨미투 운동이 국제적 사례로 공유되고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국제단체 활동가들은 학내 성폭력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처를 가장 궁금해했다.

“국제단체 활동가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거였어요. 한국은 그래도 비교적 선진국에 속하고 아동보호에 대한 합의도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왜 학내 성폭력에 대해선 국가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했는가를 궁금해한 거죠.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좀 씁쓸했어요. 청소년 전화 1388이나 위클래스처럼 학내 성폭력을 접수하거나 상담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담 자체가 전문성이 부족하고, 오히려 스쿨미투에 부정적인 쪽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서 고발자들이 이런 창구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점을 계속 설명해야 했어요.”

실제로 스쿨미투 고발자들은 학교 내 창구를 통해 교내 성폭력 문제를 상담했을 때 ‘너가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들어야 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의 입시위주 교육에 대한 설명도 필요했다고 한다. 입시와 직결되는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교사에게 학생들이 제대로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이 학내 성폭력이 오랫동안 은폐될 수밖에 없는 주요 배경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스쿨미투 상당수가 수업시간에 이뤄지는 교사들의 언어성희롱에 대한 것인데 이에 대한 사법적 해결이 어렵다는 점도 이야기했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른바 학교 문화를 모두 바꿔내야 하는 것이라서 학생인권 보장 등 근본적인 문제로까지 토론이 이어졌다.

7일에는 아동미팅과 사전심의가 진행됐다. 아동미팅에선 청소년 당사자가 유엔 아동권리위원들을 만나 한국의 스쿨미투 운동에 대해 설명하고 학내 성폭력 고발자들이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지 전달했다. 아동권리위원회는 사전심의 후 2~3주 내에 이슈리스트를 발표한다. 이 리스트에 스쿨미투가 들어가 9월에 열리는 본심의에서 심의주제로 다뤄지게 되면 정부는 스쿨미투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스쿨미투에 대한 권고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국 내 스쿨미투에 대한 국제사회의 모니터링이 본격화되는 셈이 된다.

“유엔에 가기 전 교육부와도 간담회 자리가 있었는데 스쿨미투 고발자들의 첫번째 요구사항인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에 대해 ‘학교가 너무 많아서 힘들다’면서 표본조사 입장을 고수하셨어요. 행정적으로 힘들다는 건데 그게 이유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에요. 게다가 기존에 이뤄진 스쿨미투 조사과정을 보면 정해진 틀 없이 굉장히 임의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고발자들의 실명이 유출된다든지, 쉬는 시간 10분 동안 쓰라고 한다든지 사소한 것부터 중대한 것까지 사고가 많았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정부 표본조사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될까요. 스쿨미투가 없었던 학교가 정말 성폭력이 없어서 조용했다기보다는 그만큼 더 폐쇄적이어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표본조사 운운하면서 여전히 학교 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고 있어요.”

스쿨미투 1년은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시간들이었다. 학생들이 더이상 힘 없는 학생으로 머물지 않겠다는 사실을 알리는 성과가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고발자들이 조롱거리가 되거나 2차 가해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스쿨미투 1년을 마냥 슬프게만 바라보고 싶지는 않아요. 수십년간 침묵됐던 학내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시작되는 거고 서로의 고발이 용기가 돼서 끝나지 않고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움은 있어요. 정부가 대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부분을 짚지 못하고 있고요. 스쿨미투 이후 수사과정을 보면 고발자들이 너무 많은 짐을 떠안아야 했어요. 그런데도 용화여고 가해교사는 불기소 처분되었고요.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고발자들이 고립되지 않을 수 있도록, 또 성평등한 학교를 위해 구체적인 의제를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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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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