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별기획-국책연구기관장에게 듣는다│김창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제때 제대로 쓸수 있게, 남북농업협력 연구"

2019-02-26 11:21:56 게재

기후변화, 북한 농업에 새로운 기회 제공

북한 농업 선진화되면 통일비용 절감할 수 있어

농촌 잘사는 나라가 선진국, '유토피아 구상' 연구

"남북간 농업분야 협력 확대에 대비해 다양한 방식의 정책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를 추진하겠다."

사진 이의종

김창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은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곧 있을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에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정부가 필요시 활용할 수 있게끔 남북 농업협력 확대를 위한 단기 정책과 중장기 정책을 연구하겠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또 4차 산업혁명과 저출산고령화 등 사회변화에 따라 우리나라 농촌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면서 "농사를 짓는 일터의 공간일 뿐 아니라 삶터, 쉼터의 공간을 제공하는 농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촌이 쾌적하고 잘사는 나라가 선진국"이라며 "30대 젊은층, 중장년층, 은퇴연령층이 새로운 삶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농촌 유토피아'를 구상하는 연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성균관대 농학사와 경제학 석사, 미국 일리노이대 농업경제학 석사를 거쳐 오클라호마주립대 농업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30년간 몸담아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농업환경정책위원회 의장, 한국농업경제학회 회장,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기후변화·식량안보 위원 등을 역임했다. 김 원장과의 인터뷰는 22일 내일신문사에서 진행됐다.

■정부가 쌀 직불금제도 개편을 추진 중인데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쌀 직불제는 쌀 생산과잉 구조개선, 농가의 소득보전, 소농과 대농 및 쌀 농가와 타작물간 형평성 강화, 농업의 공익적 기능 및 농업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을 고려해 개편되어야 한다. 우선 쌀 생산과잉 구조 개선을 위해선 생산과 연계되지 않게 고정직불화하되 논과 밭에 대해 동일 단가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다만 고정직불화는 농가 소득안정 측면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 있다. 벼의 적정 재배면적을 유도할 수 있게 타작물재배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수확기 쌀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쌀수급 매뉴얼 마련 등의 대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 현재 직불금은 면적을 기준으로 설계돼 수령액이 대농에 집중되고 있는데 지급단가를 차등화하는 '하후상박'식 개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든 농가에 기본금을 주고 일정 부분만 면적 단위로 주는 방식이다. 아울러 농업이 식량을 공급하는 기능 외에 환경보전이나 전통문화유지 보전 등 공익적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 이같은 사항을 준수하는 농가에 대해 공익형 직불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농업, 친환경 농산물 생산을 강조해 왔는데

지속가능한 농업은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경제적으로 존속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농업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본격 추진된 것이 1990년대 중반인데 그동안 주로 친환경농산물 생산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으면 유기농업, 화학비료는 좀 쓰되 농약을 쓰지 않으면 무농약 농산물로 인증해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농업은 유기농법과 무농약에 한정되는 게 아니다. 농촌의 깨끗한 환경, 토양이나 공기, 생태 등 농업환경을 제대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연구원에서는 2015년 제4차 친환경농업육성 5개년 계획(2016~2020) 수립 연구를 수행했고, 2016년부터 적용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친환경 인증 농식품 산업 육성과 함께 농업환경보전 프로그램 도입과 농업환경조사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친환경 인증농산물을 많이 생산한다고 지속가능한 농업이라고 보지 않는다. 농업환경 관리 전체적인 측면에서 농자재 투입의 적정한 관리라든가, 가축분뇨 관리 등을 중요시 한다. 연구원에서도 경종과 축산이 연계하는 자원순환농업과 농산물의 생산-가공-유통-소비-재활용되는 순환경제 시스템 관련 연구를 체계적으로 해 나가려고 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농업에 대한 연구는 어떤가.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사실 온실가스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 이내로 매우 작다. 그래서 농업분야의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 뿐 아니라 최근 이상 기상 등 기후변화의 영향이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한 적응 연구를 하고 있다. 농업분야의 경우 온도가 1도가 오르면 농작물 주산지가 80㎞ 북상한다. 주산지가 재편되는 것이다. 사과의 경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주산지가 경북지역이었는데 지금은 강원도 양구까지 올라갔다.

특히 중요한 것이 쌀이다. 현재 쌀 자급률이 85%가 넘지만 국립식량과학원의 ORYZA2000이라는 시뮬레이션 모델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기후변화에 따라 50%대까지 떨어질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쌀 뿐만 아니라 콩이라든지 다른 작목에 대해서도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에는 홍수나 가뭄 외에 지진 등 특이 기상 현상이 늘고 있어 이에 따른 농업분야의 영향과 대응방안에 대해 연구하려 한다.

아울러 최근 국제적으로 활발한 기후변화 스마트 농업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하다. 기후변화 스마트 농업이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농업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으로 학제적 연구가 필요한 분야다. 관련 연구기관들과 함께 연구해야할 중요한 과제라 생각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북한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기후변화가 북한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기후변화에 따라 많은 작물들의 주산지가 북상하고 있다. 2050년이 되면 북한이 사과의 주산지가 될 것이다. 예전 세미나에서 '앞으로 강원도 농업이 떠오를 것이다'라고 했던 게 2007~2008년도다. 실제 10년이 지나 강원도에서 많은 과일들이 생산된다. 오히려 경북지역에선 고랭지에서만 생산이 되고 있다. 현재 농촌진흥청에서 북한의 농업환경에 맞는 작목, 앞으로 북한 농업이 해야할 것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농업분야 협력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작년부터 빠른 속도로 남북간 협력이 확대되고 있고, 또 곧 있을 북미회담에 따라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원에서는 지난해 '신한반도 농업협력 연구단'을 만들어 농업분야의 남북협력을 위한 연구를 수행해오고 있다.

북한 농업의 고질적인 문제는 식량부족이다. 북한 농업의 생산성이 우리나라의 70% 정도 된다고 한다. 우선 우리의 생산기술을 북한에 지원해 식량부족문제를 해결해줄 필요가 있다. 연구단에서는 생산뿐 아니라 가공, 유통, 금융, 교역 등 전반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또 북한이 빠르게 시장경제로 변화하고 있는 것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도 숙제다. 그동안 북한은 농가에서 닭 몇 마리씩 키우는 부업축산이 위주였는데 최근에는 대규모 축산단지를 조성한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에 우리가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연구단에서 제시하려 한다.

특별히 농업분야의 협력 확대에 대비해 메뉴 방식의 다양한 정책 프로그램 마련을 위한 연구를 추진 중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정부의 정책 수요가 많아질텐데 당장 단기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2년이나 3년, 5년 이상 걸리는 중장기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해 필요에 따라 제 때, 제대로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만이 아니라 연구원의 각 분야별 전문가들을 포함해 6~7명의 핵심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북한 농업의 개혁, 개방을 앞당겨 선진화되면 우리에게도 큰 이익이 될 것으로 본다. 단기적으로 발생하는 상업적인 이익 외에도 장기적으로는 통일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4차산업혁명 기술 활용 스마트팜 현황은 어떤가.

4차산업혁명은 농업분야에도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4차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팜을 확산시키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부터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기획해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경북 상주와 전북 김제 2곳에 조성됐는데 올해 2곳을 추가 선정할 예정이다.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연구개발과 실증, 교육, 창농 및 창업을 연계해 농업분야의 스마트 거점을 만드는 것이다.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성공하기 위해선 청년층 창농 및 창업을 위한 교육프로그램과 안정적 영농정착을 위한 지원, R&D 투자, 연구개발 성과의 현장 적용 등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4차산업혁명 뿐 아니라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변화에 따라 농촌이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나.

사람이 돌아오고 더불어 사는, 또 농사짓는 일터의 공간일 뿐 아니라 쉼터와 삶터의 공간을 제공하는 농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선 상대적으로 많이 낙후된 생활SOC나 문화에 대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농촌이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쾌적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 대부분 선진국들은 농촌이 쾌적하다. 농촌이 잘 사는 나라가 돼야 제대로 된 선진국이다.

올해 국토연구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지방행정연구원, 한림대 등과 함께 '농촌 유토피아 구상'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청년층과 중장년층, 은퇴연령층 등 여러 유형의 도시민들이 축적된 경험과 전문성 및 사회적 참여 역량 강화 등을 통해 농촌을 ICT 융합기술을 기반으로 스마트팜·스마트빌리지가 실현되는 새로운 삶의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는 이상향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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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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