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무역의 세계사

인류 발전을 이끈 '무역의 힘'

2019-03-29 11:27:02 게재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 박홍경 옮김 / 라이팅하우스 / 3만5000원

#1000년 전에는 실크 금 은 향료 보석 자기 약품처럼 귀한 대접을 받는 상품만 대륙을 건너올 수 있었다. 물건은 먼 이국땅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 신비롭고 낭만적이며 고귀한 지위를 누렸다.

3세기 로마에서 최고급 수입품은 단연 중국의 실크였다. 역사는 광활한 영토의 정복, 도시적인 건축물과 훌륭한 공학 기술, 법 제도를 통해 로마 황제의 위대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218~222년 로마를 통치했던 엘라가발루스는 터무니없는 행동, 미소년과 실크를 탐하던 악취미로 기억될 뿐이다. 그는 고대 세계의 수도에 살던 대중에게 철없는 장난을 하거나 변덕스럽게 아동을 살해하는 기이한 행동으로 충격을 안겨줬다. 무엇보다 로마인의 관심과 질시를 불러일으킨 것은 그의 화려한 옷장과 체모를 모두 제거한 다음 얼굴을 붉고 희게 과장한 가시적인 행동이었다. 황제가 가장 좋아하던 옷감은 때때로 리넨과 섞어서 옷을 지어 입던 실크(sericum)였는데, 그는 서양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실크로만 만든 옷을 걸쳤다. (중략)

중국에서 로마까지 실크가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무척 더디고 위험하며 구간마다 고난이 기다리는 여정을 거쳤을 것이다. 중국 남부 항구의 상인들은 인도차이나를 따라 내려가 말레이반도와 벵골만을 돌아 스리랑카의 항구에 닿는 오랜 여행을 떠나면서 실크를 배에 실었다. 스리랑카에서 만난 인도 상인은 이 실크를 인도 남서부 해안의 타밀 항구인 무지리스, 넬신다, 코마라 등으로 운반했다. 거기서는 다시 그리스와 아랍 중개인이 디오스코디아섬까지 실크를 옮겼다.

아랍, 그리스, 인도, 페르시아, 에티오피아 상인들이 한데 어우러진 용광로와 같은 지역이었다. 디오스코디아에서 그리스 선박에 실린 화물은 바브엘만데브의 홍해 입구를 통해 주요 항구인 이집트의 베레니스까지 이동했다. 이어 낙타로 사막을 건너 나일강까지 이동했다.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하류의 알렉산드리아로 이동하면, 마침내 그리스와 이탈리아 로마 선박이 화물을 지중해 건너 로마의 거대한 종착지인 푸테올리와 오스티아로 가져갔다. 일반적으로 중국인은 스리랑카 서쪽을, 인도인은 홍해 어귀의 북부를, 이탈리아인은 알렉산드리아의 남부를 넘어 탐험하지 않았다. 오직 그리스인들만이 인도부터 이탈리아까지 자유롭게 다니면서 큰 화물을 운송할 뿐이었다.

새로 나온 책 '무역의 세계사' 중 일부다. '무역의 세계사'는 인류 발전을 이끈 원동력을 '인간의 운반하고 교환하는 본능'으로 보고 무역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바라보는 책으로 국내 최초로 완역 출간됐다.

이 책은 기원전 3000년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교역부터 오늘날 세계화를 둘러싼 거센 갈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세계무역의 역사를 폭넓게 다룬다. 실크로드 교역, 향료무역, 노예무역, 자유주의와 보호주의의 갈등,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등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세계적 경제사학자이자 금융 이론가로 이름이 높은 윌리엄 번스타인의 이 책은 무역의 역사에 세계사의 큰 사건들을 연대기 순으로 결합해 미시사와 통사의 장점을 절묘하게 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2008년 파이낸셜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 '올해의 책'에 동시 선정됐으며 2018년 다시 주목받으며 10년 만에 베스트셀러에 재진입했다.

교역 환경에 국가 운명 정해지기도

저자에 따르면 전세계가 다른 나라와 직접적인 경쟁에 노출되는 세계화는 20세기 말 인터넷의 발명으로 갑자기 이뤄진 현상이 아니며 인류 전 역사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과정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최초의 기록은 당시 잉여 곡물과 금속을 교환한 거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로마와 한나라 사이의 고대 교역은 수많은 중개인을 거치며 실크로드 전역에서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슬람이 발흥하자 안달루시아에서 필리핀까지 이슬람 상권이 형성됐다. 이 인도양 교역 체계에서 각국은 '무역할 것인가' '침략할 것인가', 아니면 '보호할 것인가'의 선택에 직면했다. 작은 도시국가에서부터 세계 최고의 제국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교역 환경을 맞았고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했다.

포르투갈이 인도양의 서쪽 관문을 지키던 무슬림 봉쇄를 깨고 희망봉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하면서 오늘날처럼 다시 서양이 상업을 지배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포르투갈도 한 세기 뒤 네덜란드에 밀려났으며 네덜란드는 다시 영국 동인도회사에 밀렸다. 이 과정에서 패권 경쟁에서 밀려난 나라는 열강의 노리개로 전락했다.

한쪽 사람들을 먹이는 길은 다른 쪽 사람들을 굶기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편전쟁을 예로 들며 중국이 어떻게 서구 열강에 철저히 유린당했는지 짚는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미중 갈등의 뿌리가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인류 역사에 대한 낙관

근대에 접어들면서 정치와 종교보다는 세속적 이념이 역사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자유무역은 인류 전반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동시에 부의 불균형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 역사에 대한 낙관적 자세를 견지한다. 무역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며 각자 최고의 상품을 준비해서 교환하는 무역 행위에 참여하려는 거부할 수 없는 욕구가 결국 세계를 번영으로 이끌 것이라는 희망을 밝힌다.

저자는 "인류는 점차 덜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무역을 통해 이웃이 죽기보다는 살 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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