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라 변호사의 사건 돋보기 (1)

학대와 훈육 사이의 '회색지대'

2019-04-30 11:32:46 게재
이보라 변호사

최근 여러 아동학대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처벌 및 재발방지를 원하는 여론에 힘입어 아동복지법,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이 제·개정되기도 했다. 이는 법률 사각지대에 있었던 피해 아동 및 부모의 권익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변화다.

하지만 부작용도 크다. 보육자가 아이를 때리는 장면이 찍힌 어린이집 CCTV 등의 자극적인 보도로 어린이집으로 대변되는 보육문화 자체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도 커졌다. 불안해진 부모들이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게 됐고 수사기관이(혹은 사법부도) 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보육자의 특정한 행위가 정상적인 훈육의 일환인지, 아니면 학대에 속하는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피의자로 몰리는 경우가 이전보다 늘어나게 됐다.

논란이 되는 장면들은 상당수가 아이들의 식사 시간에 발생한다. 아이들은 때로는 밥을 먹지 않고, 수저를 어설프게 놀리다가 음식을 쏟기도 하고, 편식하고, 음식을 충분히 씹지 않고 삼킨다. 식사 시간은 아이들에 대한 세심한 애정과 돌봄이 필요한 시간이며, 육아에 있어서 수많은 난관들 중 하나다. 그러다보니 보육자와 아이 간에 실랑이가 있게 되고, 때로는 아이가, 때로는 보육자가 감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 장면이 훈육과 학대가 교차하는 갈림길이다.

한 어린이집 선생님의 경우, 밥을 먹다가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 엉덩이를 긁는 아이를 지적하고 식사 후에 하도록 종용했는데, 공소장에는 '피해자가 밥을 먹으며 등을 긁지 못하게 하며 뭐라고 함' 이라는 정서적 학대의 한 사례로 기록돼 있었다. 같은 사건에서 피해자로 거론된 또 한 사례는 아이가 음식을 씹지 않고 오래 물고만 있어서 의자에 앉아 식사를 완전히 마치고 나서 놀 수 있도록 지도를 하였는데, '식사 후 놀이하려는 피해자를 제지 후 의자에 앉혀둠' 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과연 이런 행위가 '학대'라고 확언할 수 있을까? 아이의 부모나 조부모가 같은 행위를 했다면 정상적인 훈육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명백한 언어적, 신체적 폭력에 대한 증거가 없는 이상, 학대 여부에 대한 판단은 개별적인 상황과 맥락, 아이와 보육자의 평소 행동 및 성향 등 CCTV와 공소장 안팎에서 얻어지는 복합적인 증거를 고려한 세심한 판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최선의' 보육방식을 규정하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모든 상황에서든 충분히 실천하는 것은 어떤 보육자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나친 학대'와 '바람직한 훈육'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회색지대가 있다. '부족한 훈육'을 곧 '학대'로 매도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이보라 변호사의 사건 돋보기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