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정 변호사의 범죄파일 | (20) 유부남 변심사건

고소권 행사 신중해야

2019-05-16 11:44:11 게재

작은 원룸 임대 사업을 하는 50대 독신 여성 A는 임대차 분쟁으로 머리가 아프던 중 지인의 소개로 중년 남성 B를 만나게 됐다. B는 자신을 큰 법무사 사무실 사무장라고 했다. 한식집에서 단둘이 처음 만난 자리는 일 얘기로 시작됐지만 그들은 주기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렇게 1년이 흐르고 A는 점차 B의 실체를 알게 됐다.

B는 잠시 법무사 사무실에서 단순 직원을 한 적은 있지만 사무장은 아니었으며 현재는 한량으로 부인의 수입에 의존하는 유부남이었던 것이다. 낙담한 A는 혹시 B가 이혼을 하고 자신과 결혼을 할까라는 기대도 가져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망 없는 일이란 걸 깨닫게 됐다.

B의 애정조차 식어 연락도 점차 뜸해지자 A는 마침내 배신감에 분노했고 경찰서에 B가 1년 전 처음 만나던 날 자신을 강간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고 A에게 피해자 국선변호사까지 선임되자 A는 홧김에 한 신고가 큰 일로 번졌음을 깨닫고 급하게 고소취소장을 제출했다.

위와 같은 사건은 성범죄 사건을 다루다 보면 종종 겪는 일이다. 연인이었거나 지속적으로 합의된 성관계를 가져오던 관계에서 한사람이 변심했을 경우 상대방이 그 분함을 이기지 못해 사실상 보복적 성격의 고소를 하는 일이다.

A와 같이 형사 고소 절차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무턱대고 고소부터 해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절차가 계속 진행될수록 고소당사자는 겁을 먹게 된다. 그리고 고소인이 아직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보니 자신의 섣부른 행동을 금방 후회하기도 한다.

이 같은 경우 고소당사자는 고소 자체를 없던 일로 하고 상황을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변호사에게 고소 취소를 하면 어떻게 되겠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고소 취소는 형사소송법에서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고소인의 권리이기도 하다. 또한 가해자와 고소 취소를 조건으로 합의를 한 경우나, 반드시 고소 취소를 해야만 하는 특별한 사정이 발생한 경우 반드시 필요한 절차이다. 하지만 문제는 화풀이의 수단으로 우선 고소를 한 다음 마음의 열기가 식은 후 상황을 없던 일로 되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고소 취소라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친고죄를 제외하면 고소취소가 반드시 형사절차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실상 같은 기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인지대와 송달료는 부담해야 하고 패소시 상대방의 소송비용까지 부담할 수 있는 민사소송과 달리 국가가 주체가 되는 형사절차는 사실상 모든 비용이 무료다. 그렇기 때문에 고소와 고소 취소를 반복한다 해도 당사자에겐 어떤 경제적 부담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무분별한 고소권의 남용에 따른 최소한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형사 절차를 운영하는 데에 막대한 국민의 세금이 소요된다.

재원이 한정된 이상 우발적 고소가 남발될수록 진짜 중범죄를 저지른 나쁜 범죄자들에 투여할 수 있는 수사기관의 역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고소권은 국민의 권리이지만 고소권의 남용은 국민 전체에 대한 가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양태정 변호사의 범죄파일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