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라 변호사의 사건 돋보기 (3)

재판에서 탄원서의 힘

2019-05-27 11:55:01 게재
이보라 변호사

형사소송을 진행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질문이 있다.

"탄원서를 써야 하나요? 어떻게 써야 하나요"부터 "과연 바쁜 와중에 판사님이 탄원서를 읽으시나요" 등의 말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송사에 얽히면 피고인의 선처를 위해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탄원서를 쓰는 경우가 많다. 대개 '존경하는 재판장님께'로 시작하는 탄원서는 실제 본 적도 없는 높은 법대 위에 앉아 계신 상상속의 희끗희끗한 재판장에게 탄원인의 가족, 지인, 친인척으로서 피탄원인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그리고 선처를 해 주신다면 피탄원인을 잘 다독여 사회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살게 하겠다는 따뜻한 다짐과 함께 끝을 맺곤 한다.

얼마 전 어느 사건에서는 피고인의 고령의 모친만이 매번 눈물자국 어린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곤 했다. 70대의 노모는 매일같이 "내 아이가 일순간의 실수로 중죄를 저질렀으나, 죽는 날까지 아이가 바른 길을 가도록 어미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손편지를 썼던 것이다. 이를 재판부는 기일마다 심리가 끝나면 법정문을 나서는 어머니에게 '어머님 탄원서 잘 읽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건넸고, 어머니는 법원문을 나설때마다 눈물을 펑펑 쏟곤 했다. 자식의 잘못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의 일순간의 잘못으로 가슴에 대못이 박힌 어머니에게 재판장의 말씀은 따뜻한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탄원서 덕분인지 결과적으로 피고인은 영어의 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른 사건에서는 피해자 가족이 엄벌에 처해달라는 숱한 탄원으로 피고인이 실로 선처를 구할 수 없었고 판결문에는 피해자의 이와 같은 탄원이 양형에 반영되었음이 기재되었다.

탄원서는 일종의 보증서다. 피탄원인(주로 피고인)이 얼마나 성실하고 준법의식이 투철하며 주변사람들을 아끼고 돌보아왔는지, 이와 같은 인생을 살아온 피탄원인이므로 범죄 억제와 재사회화의 목적에 부합한다는 보증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의 인성과 성행을 알 수 없는 재판부로서는 피탄원인의 사회적 유대관계나 선처에 합당한 이유를 탄원서에서 찾기도 한다. 역으로 피탄원인이 주변으로부터 평가가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역으로 원한을 사고 있을 경우, 피탄원인에 대한 엄벌을 구하는 탄원서가 제출된다면 재판부의 심증을 굳히거나 양형에서의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므로 탄원서는 최대한 충실하게 작성되어 제출되어야 한다.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든지 탄원은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 제3자로서 사법기관에 고하는 나의 목소리이며 일종의 청원이다. 시각 및 청각장애가 있던 어느 탄원인은 삐뚤 빼뚤 탄원서를 쓰면서도 혹시 판사님이 읽지 못할까 주변에서 써준 번역문을 첨부하여 제출하였다.

이처럼 말주변이 없고 글재주가 없어도, 악필이어도 한글자 한글자 진심을 담아 의지를 표현한다면 탄원인의 진심이 닿을 것이다.

[이보라 변호사의 사건 돋보기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