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의 생명존중이야기

스트레스 높은 중년 독거남, 5월이 두렵다

2019-05-29 11:39:25 게재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는 봄에는 꽃보다 주검을 더 많이 본다고 했다. 봄자살 피크라는 현상 때문이다. 자살자수가 지난 3년간 가장 많은 달, 5월의 끝에 와있다.

5월의 자살자수 증가는 '봄 정점 (Spring peak)' 이라는 계절적 요인과 더불어 '가정의 달'이 주는 사회적 자극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5월은 '근로자의 날'로 시작해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등 외로운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고 박탈감에 시달리는 달이기도 하다. 5월 자살의 위험함이 외로움과 관련됐다는 통계는 아주 많다.

자살시도자의 시도 동기도 5월에는 외로움과 관련된 경우가 더 많다. 필자의 임상적 경험을 비추어봐도 5월에는 어버이날 전후해서 방문자가 없는, 그래서 배고픔보다 더 괴로운 외로움으로 인해 노인분들이 자살을 시도해서 입원했던 적이 많았다. 물론 꼭 노인들만 더 외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청년들도 외로움을 호소하는 비율이 높다. 201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30대 청년들의 자살충동경험과 관련이 깊은 감정적 자극은 '외로움'이라고 보고했다.

1년에 한번 자살통계를 발표하는 우리와 달리 매월 전월치 자살 통계를 발표하는 일본 통계청에서 수년전 '5월에는 20대 외로운 사람들의 자살 혹은 자살시도가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발표한 적도 있다.

외로운 삶을 살 것으로 추정하는 1인가구 혹은 독거자들의 자살율은 일반적으로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복지부의 독거노인 조사에서도 주변 사람들과 거의 왕래를 하지 않는 은둔하는 독거노인은 고독감, 우울감, 자살생각에서 다른 노인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보였다. 1인 가구가 30%에 육박한 도시 서울에서, 가장 우려될 만한 5월 자살의 양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독거인의 자살율이 이 달에 가장 높고 특히 최근의 양상은 독거노인보다 독거 중년 자살자가 늘었다는 것이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의 5년치 자료를 분석한 결과 40~50대 독거 남성들의 5월 사망자수가 노년층보다 더 많아졌다. 지난 5년간 5월의 서울은 유의미하게 1인 가구의 자살율이 높았고, 특히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독거인들 중에서, 또 중년층 독거 남성에서의 자살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복지와 돌봄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가장 외로운 이들이 40~50대 남성이라는 것이고 서울은 이런 위기의 남성들이 밀집돼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한창 활동을 하면서 인생의 전성기가 되어야 할 시기에 좌절과 시련, 즉 사업이나 직장에서의 실패, 경제적 어려움, 이혼, 실업, 부모 및 가족과의 단절, 스트레스, 알코올 남용 등의 이유로 이 연령의 남성들은 큰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이들은 만나기도 어렵고, 알코올 관련 질환의 비율도 높아 접근 난이도가 크고, 여러 서비스에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고 한자리에 모이기도 어렵다.

커피집에 가서 앉아있는 것도 쑥스러워하고 여러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불편해 한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에 제안한다. 40~50대가 이용하기 좋은 공간, 카페, 복지관 등을 몇 곳부터라도 시작해보았으면 한다. 이들의 외로움과 난관에 맞게 새롭게 디자인된 중년의 남성을 위한 행복센터 혹은 복지관이 필요하다.

현재의 50플러스센터는 은퇴한 사람들의 자리라면, 새롭게 시작하는 50대 외로운 남성들을 위한 센터는 자살로 생을 불행히 마감하는 것 아니라 삶의 '재기'를 꿈꿀 수 있는 자리여야할 것 같다.

돌봄과 복지, 그리고 새로운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역량의 제공과 함께 이들을 외로움에서 탈출시킬 수 있는 사회적 가족을 제공해야 한다. 부모에게는 창피해서 연락 못하고, 가족에게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고, 사회에서는 짐이 되어버린 것 같은 서울 중년 남성에게 다시 사회에 연결될 수 있는 길을 내야한다.

이들의 외로움을 자살이 아닌 삶의 에너지로 전환하도록 도와야한다. 외로움은 자살과 가장 깊은 관련이 있는 핵심적인 자살 감정이다. 저명한 심리부검학자 토마스 조이너도 소속감의 결여, 외로움이 자살행동을 결단하는 세 가지 요인 중 하나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삶의 자리가 있어야한다. 서울 5월의 자살통계가 말해주고 있는 것은 서울시가 정신적으로 힘든, 외로운 40~50대 중년의 자리를 빨리 마련해야한다는 웅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