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라 변호사의 사건 돋보기 (4)

민심과 '법심'이 충돌할 때

2019-06-12 11:35:05 게재
이보라 변호사

흔히 접하는 표현 중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판결'이라는 말이 있다. 사건에 대해 국민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구하고 설문조사를 실시하지 않아도 '국민 정서'는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수사 및 사법 당국을 지켜보는 감독관이 된다. 흔히 '국민의 법 감정'으로 표현되는 이 무형의 개념은 생각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인기 일본 드라마 '리갈하이'에선 '법은 완전하지 않으며, 이를 보완하는 것이 곧 사람의 마음이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극중에서 여론을 반영해 증거가 애매한 상태에서 살인범을 기소한 검사의 대사다. 언론을 통한 정보 획득과 의견 교환이 극도로 자유로운 현대 사회에서는 여론의 형성도 신속해, 검사의 구형과 판사의 판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러 포털사이트, 청와대의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서 여론의 힘을 쉽게 볼 수 있으며, 이는 새로운 입법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의식을 환기시켜 법의 사각지대를 줄여 나감으로써 공공의 복리를 꾀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민의와 소통의 힘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의의 개입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불러온다고 보기는 어렵다. 형법이 평가하는 것은 행위자의 행위 자체와 그 이면에 있는 행위자의 의사이며, 피고인은 발견된 증거에 대한 평가를 통해 법에 따라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 족하다.

죄질이 비슷한 피고인이 이슈화의 여부에 따라서 더, 혹은 덜 처벌받는 것은 법 적용의 평등에도 어긋나고 사회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구속영장 청구에 있어서 필요한 고려 조건은 범죄의 중대성, 증거인멸 및 도주의 위험성, 주요 참고인에 대한 위해의 우려 등이며, 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구속영장의 기각, 생각보다 적은 형량이나 집행유예 선고 등으로 순식간에 재판부가 공공의 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어느 정권, 어느 사법부를 막론하고 항상 있었던 일이다. 재판의 당사자가 재판에 집중하기보다는 여론의 힘을 업으려 자신들의 주장을 여러 매체로 퍼트리기에 골몰하는 것은 트렌드에 가깝다. 심지어 당국이 수사 단계에서 수사 정보를 언론에 고의로 흘린다던가, 죄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필요한 소환조사를 한다던가 하는 경우도 우리는 숱하게 보아 왔다. 민의를 호도하고 악용한 사례다.

민심은 곧 천심이라고 한다. 위정자는 무릇 백성의 뜻을 하늘과 같이 여겨야 한다는 맥락의 격언이지만, 모든 경우에 민의가 우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민심과 '법심(法心)'이 충돌할 때, 법은 누구의 손을 들어 주어야 할까. 화창했던 하늘에 비가 쏟아지듯 날씨처럼 바뀔 수 있는 것이 민심인데, 법은 과연 한결같이 기준을 세우고 언제나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 있을까. 법조인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고민해야 할 화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보라 변호사의 사건 돋보기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