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정 변호사의 범죄파일 | (22) 지하철 강제추행

미성년자 성범죄, 평생 트라우마

2019-06-13 11:50:11 게재

피해자 국선변호사라는 제도가 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규정된 것으로 성범죄 피해자에게 조력할 변호사가 없는 경우 검사가 국선변호사를 선정하여 형사절차에서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필자도 피해자 국선변호사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거의 매달 들어오는 피해 유형 중 하나가 지하철 성범죄다. 지하철 성범죄의 유형은 대개 강제 추행이나 카메라 촬영, 즉 몰카 촬영으로 나뉜다. 해당 범죄의 정식 명칭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과 카메라 등 이용 촬영 조항 위반이다.

피해자 본인이 스스로 피해를 인지하고 신고하거나(특히 강제추행의 경우), 지하철에 잠복해 있던 수사기관에 의해 범죄가 발각되는 경우(몰카 촬영)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성범죄가 더 쉽게 일어날 수 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간의 한계로 인해 중범죄 수준의 범죄에까지는 이르기 어렵다. 그만큼 처벌도 상대적으로 미약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지하철 성범죄의 심각성은 여느 성범죄와 다르지 않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피해자에게 미치는 파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성범죄에서 면식범이 가해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과는 다르게, 지하철 내에서 벌어지는 강제추행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평소 친분관계가 전혀 없는 자가 범죄의 대상이 되고, 밀집된 공간에서 어떠한 사전 시그널 없이 직접적인 스킨십을 통해 범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인들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할 미성년 시기에 지하철 내 성범죄를 경험할 경우 그 기억이 매우 강렬하게 남아 평생 동안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실제로 여성들 중 상당수가 미성년 시기에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 인생의 첫 번째 성범죄 피해를 경험하게 되며 그로 인한 강한 충격과 상처를 평생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수 년 내지 수십 년이 지나도 밀집된 사람들 속에서 태연한 얼굴로 자신을 추행하던 가해자의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현대 대도시 사회에서 출퇴근 시간 혼잡한 상황을 이용한 성범죄는 아마도 당분간은 줄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벌어지는 범죄라고 하여 각 피해자의 마음에서 그 범죄로 인한 고통스러운 기억도 그만큼 쉽게 희미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양태정 변호사의 범죄파일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