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의 생명존중이야기

자기 못챙기는 중년 남성을 구하자

2019-06-26 11:17:52 게재
OECD 가입 국가의 대부분에서 자살자수가 가장 많은 세대는 중년 남성이다. 중년 남성은 중년에 찾아온 스트레스 앞에서 매우 취약하다. 즉 중년 남성은 약하다. 중년 남성에 대한 잘못된 신화가 고쳐져야만 개입이 가능해지고 도움을 줄 수 있다.

35세부터 시작하여 64세까지의 남성들은 현재 가장 많은 자살을 하고 있고, 미국, 영국, 호주 그리고 우리나라를 포함해 살펴봐도 최근 10년 이상 연속적으로 이 연령대의 자살은 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중년 남성들의 자살에 대한 캠페인이나 적극적인 예방책 수립은 잘 시도되지 않았다.

유방암, 전립선암 극복을 위해서는 리본 행사를 하고 마라톤 홍보도 하고 자선 연주회를 개최하여 모금행사도 한다. 또 음주 운전을 낮추기 위해 체크리스트를 실시하고, 길마다 음주 운전 금지를 알리는 광고판을 곳곳에 붙이고 있고, 금연 캠페인에는 우리나라도 수백억원을 쓰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정작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치명적인 중년 남성의 자살을 줄이기 위한 캠페인이나 시민 참여 행사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위기에 놓인 중년 구하기 캠페인 필요

이는 중년 남성에 대한 오해와 이해의 부족 탓이다.

중년 남성은 그 시대의 대표적인 중추 활동 집단으로 가장, 리더, 책임자, 명령자의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지만, 신체적 건강 혹은 정신적 건강을 포함해 여러 상태를 살펴보면 통념과 상당히 다르다.

미국에서 조사한 중년 남성들 특히 자살 시도를 한 중년 남성들의 상태를 살펴보면, 40%가 우울하고, 40%가 술을 남용하고, 30%는 일을 하지 않고, 40%에 이르는 중년 남성들이 치료를 권고 받았지만 정신건강 관련 기관에 가지 않았다.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도 이미 여러 면에서 적신호가 나타난다. 술로 인한 간질환은 30~40%에 이르고, 암도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20~30% 사이에서 나타난다. 다행히 50대 남성들의 우울증 진료율은 계속 늘어나서 2010년대 초반에 비해 현재 20% 이상 증가했다.

40대와 50대는 신체적 위기가 찾아올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승진 갈등, 퇴직 위기, 자녀 입시 및 결혼, 부모 봉양 등의 다양한 문제가 동시에 찾아와서 고도의 스트레스가 중첩되는 시기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남성들은 다른 나라보다 과로사도 많다.

그리고 가장 취약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신체적, 정신적 위기가 본인을 덮쳐도 도움을 구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한다.

영국과 캐나다에서는 바로 이런 중년 남성을 위한 방송 캠페인을 2019년부터 방영하기 시작했다. 중년 남성의 인식을 바꾸고, 잘못된 선택을 교정하기 위한 목적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이다.

일본 나고야시에서도 중년의 직장 남성을 주대상으로 하는 우울증에 관한 내용과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이 담긴 교육물을 만들어 3개월간 매달 15일씩 나고야시 직장가의 지하철역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한 뒤 3개월 후부터 자살율이 줄어드는 효과를 보았다는 사례도 있다. 호주에서는 중년 남성들만 모이는 클럽을 만들어 중년 남성들의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8주짜리 프로그램을 하고, 중년 남성들을 위한 자살예방 사업팀을 남성들로만 구성해서 운영하는 중년 남성의 문화에 맞는 사업의 도입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비슷하게 아일랜드도 중년 남성의 정서적 특징을 고려하는 남성 센터를 만들어서 자살예방의 플랫폼을 만든다고 한다.

도와달라는 중년의 목소리 들어야

중년 남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위기의 중년 남성들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인식의 전환, 그 캠페인이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말도 없고, 대화도 어렵고, 부끄럼은 많고, 하지만 성질은 고약하거나 울분에 가득 찬, 그러다가도 막걸리 한 사발이면 다 무너지는 한국의 중년 남성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법, 자신의 우울을 이겨내는 법을 담은 캠페인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