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블라인드 채용이후 SKY 출신 절반으로 줄었다"

2019-07-03 11:32:28 게재

일부 시중은행, 신입행원 채용 변화 감지

모 은행장 "수도권대학 출신 지원자 약진"

시중은행 채용에 변화가 일어나는 걸까. 일부 시중은행에서 지원자의 학력과 경력을 가린 채 채용하는 '블라인드'를 실시한 이후 이른바 'SKY' 출신이 크게 줄었다는 보고가 나왔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인사팀은 2018년 하반기 신입행원 채용에서 서울대와 연고대 출신 합격자의 비중이 전체의 4%로 2017년 하반기 9%에서 절반 이상 줄었다고 밝혔다.

은행권은 2018년 은행연합회가 주도해 '모범채용기준'을 만들고 이에 따라 개별 시중은행은 △필기시험 전면 도입 △임원 추천제의 폐지 △면접시험에서 외부 전문가의 참여 △채용절차 전반에 대한 외부 전문기관 주도 등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은행권이 지난해부터 채용절차와 방식을 바꾼 데는 2017년 불거진 일부 시중은행의 채용비리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당시 채용비리 수사결과에 따르면 일부 은행은 SKY 출신자의 합격을 위해 평점이 좋은 중하위권 대학출신 지원자를 탈락시키는 등 심각한 학력차별 행태를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권이 채용 과정에서 보여준 학력 차별은 사회적 공분을 불러왔고, 다수의 취업희망 청년에게 좌절감을 심어줬다.

따라서 이번에 비록 일부 은행에 국한되고 한 두차례의 일시적 현상이기는 하지만 은행권 채용에서 SKY 출신의 감소는 의미있는 변화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일부 은행의 경우 스카이 출신의 감소는 서울 중하위권 대학과 수도권 대학의 약진으로 나타났다. 한 시중은행 노조위원장은 "수도권 한 대학은 2명이 합격했는데, 블라인드 채용이후 9명으로 늘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한 시중은행 은행장은 이렇게 말했다. "면접관들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의 중하위권 대학과 수도권 대학 출신이 근성이 있다고 한다. 시중은행은 한국은행이나 금융공기업과 달리 SKY 출신이 필요한 게 아니다"라며 "최근 면접은 몇마디 물어보고 끝내는 방식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을 두고 지원자에 대해 깊이 관찰하기 때문에 비교적 사람에 대한 종합적 평가가 가능하다."

실제로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 등 상당수 금융관련 공공기관의 SKY 출신 합격자는 시중은행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높다. 최근 민주당 최운열 의원에 따르면 9개 금융공기업의 스카이 출신 신입사원 비중은 22.1%에 달했고,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는 각각 53.4%와 50.7%로 합격자의 절반이 이들 학교 출신이어서 심각한 학력 편중 현상을 드러냈다.

다시 앞의 시중은행으로 돌아가 보자. 이 은행은 보통 다른 시중은행처럼 1년에 500명 안팎의 신입행원을 뽑는다. 따라서 기존에 SKY 출신이 50명 안팎의 합격자를 냈다면 지난해에는 20여명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게다가 시중은행은 지방대 출신을 별도로 뽑는 인원이 있어 이를 고려하면 신입행원 가운데 여전히 SKY 출신이 다른 서울 및 수도권 대학 출신에 비해서 많은 셈이다.

물론 블라인드 채용이 능사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인사팀 관계자는 "학력과 스펙을 배제하고 지원자를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라면서도 "개개인이 준비한 자격증이나 다른 경력을 드러낼 방법이 없어져 오랫동안 취업을 준비해온 지원자들에 대한 또 다른 역차별이 생길 수 있고, 은행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제 때 뽑지 못할 수 있는 단점도 있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사실 기업의 채용방식과 절차에 대한 획일화라는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상당수 기업이 상시채용과 부문별 채용 등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뽑기 위한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수십년 동안 경단련이 주도해 일류 대학 졸업생부터 줄세워 큰 기업부터 사실상 입도선매로 취업자를 데려가던 일본도 최근 상시채용을 통한 개별기업의 자율적 판단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은행권 채용비리 재판에서도 이 문제는 중요한 쟁점의 하나이다. 민간기업인 은행이 인재를 채용하는 데서 경영진의 자율적 결정이 어디까지 인정될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행권 모범채용기준이라는 획일적 채용절차와 방식에 따라 모든 은행이 인재를 뽑는 지금의 행태가 바람직한 것인지는 좀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블라인드 채용을 통한 학력차별의 일부 완화라는 결과는 많은 취업준비생에게 희망적인 소식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추세가 단지 일시적이거나 일부 은행에 그칠 것이 아니라 다른 금융공기업을 포함해 커다란 변화의 흐름으로 정착되는 계기가 되기를 많은 이들이 원할 것이다.

덧불이면 모든 시중은행들이 소위 채용비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인재 채용과 함께 이를 적극적으로 공개함으로서 취업준비생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채용정책의 전환도 고려했으면 한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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