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라 변호사의 사건 돋보기 (6)

눈 뜨고 코 베어갈 수사기관 조사

2019-07-05 11:55:27 게재
이보라 변호사

어느 날 갑자기 수사기관으로부터 출석 통보를 받게 되면-대부분은 보이스 피싱이겠지만-대부분의 사람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 어떤 질문을 받을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은 끝이 없다. 피해자, 혹은 피의자가 조사에 출석하여 행하는 모든 진술은 조서에 그대로 기록되며, 해당 사건의 향방뿐만 아니라 당사자를 비롯한 주변인들 모두의 인생을 바꿔놓을 만한 힘을 지닌다. 송사(訟事)와 무관하게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은 서슬퍼런 수사관 앞에서 본인의 입장은 고사하고 사실 관계를 명확히 진술하는 것만도 벅차다. 이 때 절실한 것이 경험 많은 변호인의 도움이다.

내가 피해자의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자. 피해를 보상받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공권력에 도움을 구했지만, 수사관은 어쩐지 미덥지 못하다. 내 말을 다 믿는 것 같지 않고,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태도에다 상대방 편을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내 억울함을 풀 수 있을까 의심이 들면서 수사관의 질문에 점점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조서에는 사건의 본질은 사라지고 허술한 분노만 남는다. 법적 대리인인 변호사의 동석 없이 고소인 혼자 조사에 임했다가 사건이 각하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와 같이 수사기관의 조사에 '말린' 케이스다. 설령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할 말을 다 하지 못했거나 사실과 다른 진술을 했더라도 조서에 날인을 마친 이상 돌이킬 수 없으며, 다음 조사에서 이를 번복하더라도 신빙성에 의심을 받고 재판에서도 불리해진다. 변호인은 이렇게 피해자가 본의 아니게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조사가 진행되도록 도와줄 수 있다.

피의자의 입장에 서면 변호인의 도움은 더욱 절실하다.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강압 수사가 예전에 비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일단 수사의 대상이 된 이상 수사기관은 피의자에게 호의적이기 어렵다.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수사관은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겁을 주고, 때로는 회유하며 입맛에 맞게 조서를 써내려 간다.

능수능란한 수사관의 언변에 지나치게 긴장이 풀린 어떤 피의자는 수사 선상에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여죄까지 자백하여 추가 기소를 당했다. 다행히 자백 외 보강증거가 없어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본인이 진술한 조서를 보고 두고두고 자책을 했다는 후문이다. 애초에 죄를 안 짓는 것이 최선이나, 지은 죄보다 더 큰 죗값을 치를 필요는 없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라고 한다. 다툼에 휘말리는 경험 없이 살아온 사람에게는 생전 처음 출석하는 조사가 딱 그렇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고, 재판에서 대립하는 당사자들 간에는 입장의 차이가 반드시 있다. 법은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 판결을 내리기 위한 도구이며, 그 도구에 보다 익숙한 쪽이 더 나은 결과를 얻어갈 수 있다. 어느 유행가 가사와 같이 괴롭고 서러운 의뢰인의 등불이자 벗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변호인이다.

[이보라 변호사의 사건 돋보기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