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기자리포트

“민정수석 있는 한 정보경찰 개혁은 없다”

2019-07-12 13:33:05 게재

문재인정부 정보경찰 개혁 지지부진

‘권력과 정보경찰의 공생’ 근본 원인

청와대 관계자 “행정부 차원과 입법

과제로 나누어 예정대로 진행중이다”

3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의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한적한 토론회장이었습니다. 기자는 서너명 정도밖에 없었고 방청객도 열명이 채 안 되어 보였습니다.

참여연대가 개최한 ‘정보기관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여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법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이 날 토론회 패널들도 인정했듯 ‘정보기관 개혁이 지지부진하다(그리고 지지부진함이 끝날 희망도 별로 안 보인다)’고 사람들은 보나 봅니다.

토론회의 흥행 여부와는 별개로 내용 자체는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권력을 겨누는 발언들이 나왔고, 설사 이번 정부에서 개혁이 안 된다 하더라도 무엇이 가장 큰 장애물인지 짚어볼 수 있는 통찰력 있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토론회 패널로 국정원과 경찰에서 꾸린 개혁위원회 위원으로 길게는 2년 가까이 활동을 했던 인물들이 참석했기에 가능했습니다.

토론회 참석자 중 양홍석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발언이 가장 인상깊었는데요. 2년간 정보경찰 개혁을 이야기해 왔는데 성과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하소연으로 토론을 시작한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정보경찰 간의 ‘공생’ 관계를 들며 정보경찰 개혁이 안 되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파헤쳤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있는 한 정보경찰 개혁은 안 된다는 것이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했던 그의 결론입니다.

“경찰개혁위원회를 처음 할 때는 정보국 기능과 업무를 잘 분석해서 다른 곳(부서)에 붙여야겠다 하는 순진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보국은 청와대 민정수석과 관련돼 있어서 민정수석을 안 없애면 정보국을 폐지할 수가 없었어요. 민정수석실은 정보에 목말라 있는 곳이고 정보를 집어다 주는 곳이 없어지면 안 되는 거거든요. 지금 청와대는 (이 구조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민정수석이 폐지되지 않으면 정보경찰은 안 없어진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토론회를 할 게 아니라 민정수석이 물러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했다가 여러 곳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실명도 거론했습니다.

“(청와대가) 경찰 정보국에 대한 강한 애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정보국 수준은 대통령령으로 충분히 개혁조치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있잖아요. 안 하고 있다는 건 안 하겠다는 뜻입니다. 결국 권력(정보)기관 개혁이라는 건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그냥 정치적 어젠다에 불구하고 시민들을 현혹하는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게 최근의 제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정보경찰이 정말로 없어질까봐 마음 졸였지만 지금은 안심하고 있는 경찰의 분위기도 전했습니다.

“경찰 개혁위원회가 처음에 권고할 때만 해도 경찰이 겁을 냈어요. 정말 바뀔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데 나중에 기무사 보면서 안심했어요. 기무사를 개혁하지 못하고 개명만 했잖아요. 그래서 그 때 조국 (민정수석)의 개혁은 개명이냐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경찰 정보국은 지금 그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명 플러스 상징적 수준의 처벌 규정만 마련하면 되겠다고.”

양 변호사의 토로 이후 토론회 패널들은 ‘청와대가 왜 국내 정보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할까’ ‘도대체 무슨 정보가 필요하다는 걸까’ ‘청와대가 정말 의지가 있기는 있나’ 등에 대해 여러 의견이 오갔습니다.

패널이 아닌 방청객으로 참여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도대체 청와대가 왜 정보경찰을 못 놓는 것인지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정보기관 개혁의 지지부진함에 답답해하는 독자들의 생각을 대변할 수 있을 것 같아 마무리 멘트로 한 교수의 질문을 적어봅니다.

“이 토론회 자리에 전직 민정수석이 한 분 앉아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어떤 정보를 왜 필요로 하는가에 대해 사실 듣고 싶어요. 예를 들어 정책정보 중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경제정보 같은 것은 여러 가지 지표가 발표되기도 하고 여러 면으로 수집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청와대는 그 외에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는 걸까요? 그리고 과연 그것을 위해 경찰이 움직여야 하는 걸까요?”

문재인정부의 ‘적군’(?)은 아닐 터인 참여연대 내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심상치않아 보이기는 합니다.

12일 청와대 관계자는 정보경찰 개혁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토론회 지적에 대해 “정보경찰 문제는 경찰청이 주관이 되어 행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과제와 입법이 필요한 과제로 나누어 예정대로 진행중”이라면서 “시민단체 등 국민들이 주시는 지적을 경청해 경찰의 정보수집이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되게 운용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사는 7월 5일자 e내일신문 기자리포트에 표출된 내용에 12일자 청와대 관계자의 반론을 추가해 업데이트한 것입니다. e내일신문(http://e.naeil.com)을 구독하거나 스마트폰의 구글 플레이 또는 앱스토어에서 내일신문을 검색한 후 ‘e내일신문’ 앱을 다운로드 받으면 종이신문에 없는 차별화된 콘텐츠인 ‘내일 기자리포트’를 볼 수 있습니다.

김형선 구본홍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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