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라 변호사의 사건 돋보기 (7)

술로 인한 범죄, 법은 용서 안 해

2019-07-19 11:08:08 게재
이보라 변호사

인간은 술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지만, 술이 범죄의 화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여름이 되면서 특히 성범죄 사건의 변호를 많이 맡고 있는데, 술로 인한 문제로 찾아오는 의뢰인이 대다수다. 그래서 술은 어찌 보면 변호사들에게는 무척이나 고마운(?) 존재다.

술에 취해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도 핑계의 처음과 끝은 술이다. 아직도 '술김에,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변명이 통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기억이 없었다는 이유로 감형을 받거나 죄가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재판부에게 변명일색의 인상을 주게 돼 양형에서 불리할 수 있다.

특히 사람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해 간음 또는 추행한 자를 처벌하는 형법상 준강간 또는 준강제추행의 경우가 문제된다.

피의자나 피고인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피해자는 술에 취해 성관계에 동의한 사실이 없다고 항변한다. 피의자나 피고인의 만취 주장은 결국 책임의 회피로 받아들여지고, 피해자의 만취 주장은 이른바 블랙아웃 상태에 불과해, 준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심신상실' 상태로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

판례에서 준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피해자의 '심신상실'은 정신장애 등으로 성행위에 대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 즉 상대방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거나 술·약물 등의 영향으로 성적 행위에 대해 정상적인 대응·조절능력과 판단능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준강간의 경우 피해자가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취해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는 정도가 돼야 심신상실이 인정된다.

피해자가 단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주장만을 하게 될 경우 수사기관이나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볼 가능성이 크다.

최근 사례에서 어느 피해자는 "술을 마셔서 기억이 없는데, 옷이 벗겨져 있었다" "술을 마셔서 혼미한데 숙박업소에 끌려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가 상대방과 어깨동무를 한 채로 숙박업소에 다정히 들어가는 모습과 함께 직접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결제하는 장면이 CCTV에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고 본인은 본래 취해도 티가 나지 않아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항변하더라도 그가 무고죄로 역고소를 당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이처럼 술에 취했을 때에는 성관계에 대하여 동의했지만 술에서 깨어난 이후 성관계 전후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준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례는 적잖이 발생한다. 단지 술을 핑계로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거나 악화시키고자 한다면 이는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술을 핑계로 죄를 부인하는 자와 술을 무기로 남에게 누명을 씌우는 자 모두에게 법은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보라 변호사의 사건 돋보기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