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라 변호사의 사건 돋보기 (8)

천냥 빚 갚는 가해자의 사과

2019-08-14 11:29:05 게재
이보라 변호사

바야흐로 '대 소송시대'다. 접속자 수가 어느 정도 되는 인터넷 커뮤니티라면 예외없이 법률사건과 관련된 질문들이 넘쳐난다. 고소가 가능한지, 배상은 받을 수 있을지 묻는 질문에 꼬리를 물고 댓글이 달리고, 마지막에는 변호사에게 상담하라는 내용의 댓글이 달린다. 변호사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원만히 해결될 수 있는 일이 감정적인 다툼으로 번지고 명예훼손이나 폭행과 같은 법적인 문제로 확대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이라는 유명한 표현이 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인 토마스 홉스가 언급한 이 말은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에서 각자의 권리를 무한히 추구할 때 생기는 자연적인 갈등 상태를 말한다. 이런 갈등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법이다. 다만, 법적으로 시비를 가리기 전에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충돌은 줄어들고 사회는 한결 안정될 것이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예나 지금이나 진리에 가깝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남에게 피해를 끼쳤을 때, 현실적인 보상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의 표현이다. 소송에서 가해자를 대리할 때, 그의 잘못이 분명한 경우 변호사로서 가장 먼저 권하는 방법은 진실된 사과다. 이것만으로도 상대방이 소를 취하하거나 형량이 경감되는 등 좋은 결과를 얻은 사례가 많다. 반대로 피해자의 입장에 섰을 때, 가해자의 구구한 변명과 성의 없는 태도에 의뢰인이 격분하여 소위 '끝까지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당사자의 감정만큼 중요한 것이 재판부의 감정인데, 탄원서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전의 글에서도 다루었지만, 가해자의 깊은 반성과 진실된 사과에 감복해 가해자의 선처를 바라는 피해자의 탄원서는 최고의 양형 자료다. 판검사도 사람이고, 이미 발생한 사건의 배후에 있는 것이 선의인지 악의인지에 따라 사법부의 법적 판단은 현저히 달라질 수 있다.

사과문을 잘 쓰는 사람이 드문 것은, 사과를 잘 할 사람은 애초에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과문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표현들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이 기준에 따라 유명인이나 기업체의 사과문을 분석한 글이 인터넷 상에서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죄를 지었으면 사과를 잘 하자. 진실된 사과는 사람의 마음은 물론, 법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

[이보라 변호사의 사건 돋보기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