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외교정책 '석유'로 이해하라

2019-08-16 10:49:38 게재
최지웅 지음 / 부키 / 1만8000원

#현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면 석유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두 가지 키워드가 '민주화'와 '경제 발전'이라면 세계 현대사의 두 가지 키워드는 '석유'와 '냉전'입니다. 이 중 냉전은 종식되었지만 석유는 여전히 세계 정치와 경제 흐름의 중요한 축입니다. 석유가 주요 에너지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석유가 현대 세계에서 '이해관계의 근원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석유는 국제 사회에서 부와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석유의 지배는 곧 세계의 지배였습니다. (중략)

한반도의 주요 이슈인 북핵 문제만 봐도 그렇습니다. 북핵 문제에 대해 미국은 중국이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중국이 북한의 석유 공급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 이란과의 핵 협정을 파기하자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카드로 미국을 압박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석유 공급의 중요한 통로입니다.

새로 나온 책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의 일부다. 279만3000배럴은 2016년 기준 한국에서 하루 평균 소비된 석유의 양이다. '석유'하면 보통 휘발유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에 이 많은 소비량의 상당 부분이 운송 수단의 연료로 사용됐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운송에 사용되는 석유는 32.6%고 52.8%는 플라스틱 고무 화학섬유 등을 만드는 석유화학 산업에서 쓰인다. 석유 공급이 중단되면 운송은 물론이고 소비재의 상당 부분이 생산을 멈출 것이기 때문에 석유가 현대인의 경제 행위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석유의 중요성은 개인의 경제적 삶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4차례의 중동 전쟁, 진주만 공습, 9.11 테러, 걸프전과 이라크전 등 현대사의 수많은 전쟁과 테러가 석유 때문에 벌어졌다.

또 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이었던 독일과 프랑스가 화해해 유럽연합을 설립했던 것, 1970년대 이란이 친미 국가에서 반미 국가로 돌아섰던 것, 1973년 서유럽 한국 일본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을 비판하며 친아랍 성명을 낸 것의 배경에도 석유가 있었다. 이 외 1980년대 미국이 세계화와 금융화를 추진하고 2003년 블레어가 '부시의 푸들'이라 불리면서까지 미국의 이라크전을 도왔던 배경도 석유였다.

이렇듯 석유는 단순한 연료나 원료를 넘어 국제정치와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동인이다. 이 책의 저자가 석유를 통해 현대사를 살피려는 이유다.

독일과 프랑스가 화해하기까지

2차 세계대전으로 원수였던 독일과 프랑스는 함께 유럽연합 설립을 주도했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면 석유가 어떻게 국가 간의 외교에 영향을 미치는지가 드러난다. 유럽연합의 시작은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집트 대통령은 아스완댐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소유였던 수에즈 운하를 일방적으로 국유화한다. 당시 매일 130만배럴의 석유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는데 이는 유럽 수요의 절반 이상이었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를 점령한다. 이를 수에즈 위기, 또는 2차 중동전쟁이라 부른다. 그러자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수에즈에서 군사 대응을 한 사람은 석유 문제도 그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중동비상대책위원회의 활동 중지를 선포한다.

중동비상대책위원회는 서유럽에 석유를 공급할 계획을 세우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이 말은 유럽에 석유를 공급하지 않겠다는 협박이었다. 이 협박에 영국과 프랑스는 군대를 철수한다. 저자에 따르면 수에즈 위기 이후 프랑스는 자신이 미국과 같은 반열의 강대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독일과 화해를 추진, 1963년 독불 화해 협력 조약을 체결한다. 이는 훗날 유럽연합으로 발전한다.

9.11 테러 '문명의 충돌'만은 아니다

2001년 9월 11일, 2대의 여객기가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충돌하는 장면은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에 대해 서구 문명이 세계화를 통해 전 세계로 보급되면서 이슬람 문명과 충돌하면서 발생한 비극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책 '문명의 충돌'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저자는 9.11 테러에서 나타난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은 종교나 문화의 차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문명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나 테러를 일으킬 만큼 갈등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중동 지역 이슬람교도들의 강력한 반서구 정서의 근원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근본적인 출발점은 팔레스타인 문제였고, 그 이후로 진행된 석유로 인한 갈등과 분쟁, 부패와 빈곤"이라고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2017년 트럼프가 취임한 이래 미국의 대외 정책이 대단히 공격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배경에도 석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셰일 혁명'이다. 셰일 오일 시추 기술은 2000년대 초반에 개발됐고 2018년에 이르러 미국은 하루 110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등극한다. 저자는 이것이 미국의 외교 정책이 달라진 배경이라고 본다.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중동 석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중동의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셰일 혁명으로 자급은 물론이고 수출까지 가능해지면서 미국은 중동에 대해 예전과 같은 절박함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됐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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