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기자리포트

AI와 변호사의 대결, 공정했을까?

2019-09-06 12:59:54 게재

인간 수준의 AI 변호사가 법률시장에 나오려면 얼마의 기간이 걸릴까요. 8월 29일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알파로 경진대회’에서 1·2·3위를 인간+알파로 팀이 휩쓸자 법조계는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한주 동안 “인공지능에 변호사 완패”, “AI, 사람 변호사 제쳤다”라는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알파로’는 인텔리콘 연구소가 개발한 인공지능 계약서 분석기의 이름입니다. 2019 국제인공지능박람회에서 최초로 공개된 알파로는 딥러닝, 자연어처리, 기계독해 법률 추론기술이 모두 융합된 것으로 근로계약서를 독해해 상세한 해설을 제공하는 세계 최초의 노동법 인공지능 시스템입니다.

알파로를 개발한 인텔리콘 임영익 변호사에 따르면, 5년의 기간 동안 100여명에 가까운 변호사와 엔지니어, 프로그래머가 투입됐습니다. 임 변호사는 6일 “응용 텍스트 인공지능을 구글 등의 굴지의 회사가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알파로를 개발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대회에는 변호사 2인으로 구성된 9개팀과 변호사+AI로 구성된 3개팀 등 총 12개팀이 참가했으며 3종의 근로계약서를 객관식과 주관식으로 각각 평가하는 방식으로 계약서의 분석력과 자문력을 겨뤘습니다. 문제는 객관식, 주관식 단답형, 주관식 서술형으로 출제됐고, 주관식 답안은 수기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의 운영에 대해 “공정하지 못하다”는 기자들과 법조인들의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AI가 이길 수밖에 없게 판을 짜 놓고 대회를 열었다는 겁니다. 대회를 참관했던 A변호사는 “근로계약서 분석에 한정해 대결을 펼쳐 알파로가 이길 수밖에 없도록 대회를 설계했다”고 말했습니다. 1위를 한 AI팀 김형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근로계약서의 경우 가장 많이 사용되는 표준적인 계약서라 알파로가 유리하다”고 밝혔습니다.

문제풀이에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시간은 1문은 2개의 계약서를 살피는데 30분, 2문은 1개의 계약서를 살피는데 20분이 주어졌습니다. 알파로+변호사팀은 6초만에 알파로가 내놓은 답을 이용해 주어진 시간 안에 답을 적으면 됐지만, 변호사팀은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를 꼼꼼히 읽는 것 자체가 어려워, 좋은 답안을 작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실제로 시간에 쫓겨 백지를 낸 변호사 답안도 있었습니다.

심사위원장이었던 이명숙 변호사는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을 줬기 때문에 공정했다”고 말했지만, 문제당 최소 한 시간은 줬어야 했다는 법조인들의 의견이 많습니다. 임 변호사도 “다음에 이런 대회를 한다면, 2~3시간 정도는 시간을 줄 것”이라며 “시간·공간의 한계 때문에 부득이하게 문제풀이에 짧은 시간을 줬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조인들의 지적도 일리있다는 것이 임 변호사의 말입니다.

알파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임 변호사는 “사람을 대체할 AI 변호사는 최소 수십년이 있어야 나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법률 분야에서 인간 변호사는 종합적인 추론을 하지만, 기계가 인간 이상의 종합추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정형적인 근로계약서 등으로 범위를 좁히면 알파로가 이길 수 있지만, 분석 범위를 조금만 넓혀도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사람 수준의 계약서 작성은 최소 수십년이 걸릴 것이고,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 변호사가 법률 검토를 할 때 참조할 수 있는 보조도구로 알파로를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많은 변호사들은 정형적인 법률 계약서 자문은 인공지능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시대가 곧 열릴 것으로 전망합니다. 실제로 알파로 시연과정을 참관한 결과 사람이 2~3시간 이상을 들여야 분석할 수 있는 계약서를 알파로는 단 6초 만에 분석했습니다. 임 변호사는 그는 “비정형적인 근로계약서와 부동산 계약서 등으로 확장 적용이 가능하도록 알파로를 개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안성열 기자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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