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채근담 하룻말

씹을수록 맛깔나는 소확행 교과서

2019-09-27 11:13:11 게재
홍응명 지음 / 박영률 옮김 / 제백석 그림 / 지식공작소 / 2만4500원

"오로지 나만 생각하면 뜻은 부서지고, 머리는 캄캄해지고, 은혜가 비참해지고, 마음엔 때가 타서 조만간, 후회한다. 욕심내지 않음을 보배로 삼은 까닭에 옛사람들은 일생을 건널 수 있었다." - 수신(修身) 자기를 살피다 7일 중에서-

최근 '소확행'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또는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을 말한다. 덴마크의 '휘게' 스웨덴의 '라곰' 프랑스의 '오캄' 과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런 소확행의 바이블로 불리는 중국 고전 '채근담'을 완전히 우리말로 재탄생했다. 이번에는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제백석 그림 365점과 함께다.

채근담은 명나라 사람 홍응명이 알려진 글을 골라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거나 새롭게 쓰거나 또는 자기 생각을 적어 놓은 책이다. 당대를 지배한 세계관, 유가의 생각, 불가의 생각 그리고 도가의 생각이 모두 담겼다.

이렇다보니 역자는 글을 옮기며 세 가지 또는 네 가지 시선으로 글을 이리저리 살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 태어나 죽는 과정을 도가는 '노닌다'고 보고 불가는 '씻는다'고 보지만 유가는 '나아진다'고 본다. 또 홍응명은 '건너간다'고 본다. 이 책을 먼저 옮긴 조지훈은 '현대인의 융통성 있는 생활 윤리서'라고 했고, 앞서 만해 한용운은 '조선 정신계 수양의 거울'이라고 했다.

하지만 옮긴이는 책을 읽고 도가가 뭔지, 천지가 뭔지, 인생이 뭔지 알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말라며 독자의 실망감을 사전에 차단한다. 이 책은 철학 교과서가 아닐뿐더러 그런 것은 책을 읽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안다고 한들 그렇게 살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매일 한 구절을 읽고 그 하나를 자신에게 묻고 거울삼아 비춰보고 그래서 굽은 곳을 펴고 넘치는 것을 덜어 내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채근담'이란 나물 채(菜), 뿌리 근(根), 말씀 담(譚), 곧 '나물뿌리 이야기'란 뜻이다. 나물의 뿌리는 질기고 맛도 써서 보통 버린다. 그런데 유가에선 '나물뿌리를 씹어 먹을 수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저자 홍응명은 입신양명에 실패하고 고향에 돌아가 실제로 나물뿌리로 장아찌를 담아 밥을 먹고 손님을 대접했다고 한다. 뒷날 사람들은 채근담을 이렇게 풀이했다. '나물뿌리를 씹는 느낌, 별 볼일 없고 거칠고 질기지만 가만히 씹다보면 차츰 맛이 깊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이야기'라고.

책은 한문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도 읽기 편하게, 어려운 개념도 시대에 맞춰 현대적으로 풀어 썼다. 한문에 얽매이지 않고 나물뿌리를 씹듯이 글을 씹고 소화해서 채근담에 담긴 마음을 우리말로 꾹꾹 눌러 쓴 책이다.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한국어 운율이다. 글은 말에서 시작되었고 말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데 우리의 마음은 호흡과 함께 움직인다. 한국인의 호흡에 잘 맞게 쓴 글은 한 번만 읽고 들어도 저절로 기억된다. 특히 책의 모든 지면은 왼쪽 면이 비어있다. 오른쪽에 실린 글과 그림을 보면서 왼쪽에는 자기 마음을 적어 놓을 수 있다. 이렇게 하루하루 읽고 적어나가면 나중에 홍응명과 제백석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본 마음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신의 인생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책을 출간한 이유로 보인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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