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시장 발작, 빙산의 일각인가

2019-10-08 10:00:00 게재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환매조건부(레포) 채권시장에 수천억달러를 지원했다. 지난달 중순 레포 금리가 10%까지 치솟으면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2주가 넘도록 레포금리가 안정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원인에 대해 많은 분석이 있었다. 애초의 설명은 상당히 단조로웠다. 금융기관의 법인세 납부와 분기실적 보고 기간이 의도치않게 겹쳤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말이 안되는 소리라는 지적이다. 경제학자이자 펀드매니저로 2017년 ‘연준의 덫에서 탈주하라’ 등의 저서를 쓴 대니얼 라칼은 7일 자신의 블로그에 “유동성이 충분하고 투자자들이 전 세계 도처에 있는 마이너스금리를 활용해 자금을 빌리려 했다면, 레포금리 급증은 단 몇 시간 내 해소돼야 할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레포시장은 금융기관들이 최고의 안전자산이라는 미국채를 담보로 제공하고 현금을 빌리는 곳이다. 레포금리는 미국채를 담보로 24시간 초단기로 현금을 빌려줄 때 받는 이자다.

라칼은 “지난달 중순처럼 레포대출 시장에서 금리가 급등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금리 정상화까지 며칠이 걸렸다는 점이 이례적이며, 더 의아한 것은 연준이 레포금리 상승을 막기 위해 며칠 동안 수천억달러를 지원해야 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금융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하고, 수익에 목마른 이들이 무수히 많은 데다, 금융기관들은 수년 전에 비해 재무적으로 더 넉넉하고 안전해졌다는 믿음이 있었다. 라칼은 “하지만 이런 믿음에 근거가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순 이후 레포시장 위기가 시사하는 바는 연준이 판단하는 것보다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훨씬 적다는 점이다. 그리고 연준이 개입하는 레포시장에서조차 치솟는 리스크와 그에 따른 전염 우려가 크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결국 막대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다던 금융기관들이 생각과 달리 지나친 레버리지(부채에 의존한 투자)를 떠안고 있는 게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라칼은 “레포금리가 지속 상승한 건 켜켜이 축적된 리스크와 빚이 일반의 추산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은 자신들이 망망대해와 같은 유동성을 창출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파도쯤은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초저금리 환경에서 수익에 목마른 금융기관들이 널렸다. 약간의 수익을 낼 수 있으면 앞다퉈 빌려주려는 이들 역시 널렸다. 하지만 지난달 중순 그와 반대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그렇다면 문제는 2가지로 요약된다. 헤지펀드 등 유동성 공급기관들의 수중에 실제 유동성이 없다든지, 아니면 최고의 안전자신이라는 미국채가 담보로 잡힐 만큼 안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

라칼은 “레포시장 위기는 우리에게 ‘유동성 공급기관들이 돈의 값(금리)이나 담보로 활용되는 안전자산(미국채), 빌리는 이의 상환능력 등 모든 것이 인위적으로 조작됐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준은 자신이 적절한 인플레이션을 만들 수 있고, 수익률 곡선을 관리할 수 있으며, 넉넉한 유동성을 제공해 투자자들이 장기투자에 나서게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며 “하지만 시장은 ‘연준이 더 이상 그같이 인위적인 마법을 부릴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지난달 레포시장 발작이 더 큰 위기의 증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연준의 과도한 유동성 주입으로 신용 전달 메커니즘이 파괴됐다. 리스크와 부채에 대한 진짜 평가가 불가능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부채와 리스크가 동시다발적으로 과잉상태에 접어들었다. 이 상황은 더 낮은 금리, 더 많은 유동성 주입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결국 지난달 중순 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라는, 가장 다각화됐고 가장 경쟁력 높다는 미국의 금융시장에서 발작이 일어났다.

라칼은 “수익률 곡선의 역전이나 마이너스금리 채권의 급증과 마찬가지로, 레포금리 발작은 앞으로 닥칠 거대한 위기의 일부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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