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세계의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리라

김수영의 공간에서 혁명을 만나다

2019-10-11 11:14:57 게재
박수연 외 지음 / 서해문집 / 1만6000원

한 작가를 이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의 작품들을 곱씹어 읽거나 평론가들의 글을 탐독하는 방법이 우선 떠오른다. 자서전이나 전기를 읽으며 그의 생을 이해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직접 발로 뛰는 방법도 있다. 그가 살았던 공간, 방문했던 공간, 그가 죽음을 맞이한 공간을 찾아가 본다면 어떨까. 글로만 읽었던 그의 생과 작품을 몸으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일 법하다.

새로 나온 책 '세계의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리라'는 시인 김수영의 언어와 숨결을 보다 잘 이해하고자 그의 삶과 문학의 공간들을 찾아 걷고 생각하고 발견한 기록들이다. 김수영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는 8명의 문학인들이 함께 했다. 시인 서효인, 손 미, 소설가 정용준, 문학평론가 박수연, 오창은, 김응교, 서영인, 김태선이 그들이다. 이들은 김수영의 공간을 만나 탐색하고 사색하며 김수영을 다시 그리고자 했다. 최하림의 '김수영 평전'(초판 1982) 이후 최초로 김수영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추적해낸 단행본이라 하겠다.

김수영은 1921년 서울 종로 2가에서 태어나 1968년 마포 구수동에서 48세의 안타까운 생을 마칠 때까지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다. 20세 시절에는 도쿄로 유학을 가서 연극의 꿈을 품기도 하고, 학병 징집을 피해 만주의 지린(길림)에 머무르기도 했으며 한국전쟁 때는 부산 거제리, 거제도의 포로수용도에 수감돼 2년여 동안 포로 생활을 하는 등 파란이 많은 삶이기도 했다.

이 책은 김수영 생애의 주요 장면마다 그가 머물던 공간을 중심으로 가상의 문학지도를 그린다.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에서 도쿄까지, 만주의 지린을 거쳐 충무로, 마포, 도봉 그리고 부산 거제리와 거제도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길을 따라 걷고 공간에 머물면서 그 길과 공간이 보여주는 시인의 생애과 작품을 만나본다. 이를 테면, 김수영이 태어나고 자란 종로 거리에서는 한일강제병합 이후 20세기 초 서울의 모습과 중심지에서 밀려나는 조선 사람들의 풍경이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1964) 너머로 펼쳐진다. 저자들은 김수영이 '거대한 뿌리'를 쓴 1964년에 대해 "이때의 김수영은 그의 역사적 상처를 넘어서는 일련의 주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거대한 뿌리' '현대식 교량' '미역국' '65년의 새해'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라면서 "김수영의 생애와 문학은 그의 삶의 '거대한 뿌리'가 연이어 치솟고 변모하고 하강했다가 다시 솟구치는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밝힌다.

20세 김수영이 도쿄 유학 시절 연극의 꿈을 키웠던 장소들을 찾아 나서는 실은, 마치 '내 친구의 집'을 찾아 헤매는 영화 장면들처럼 자못 흥미진진한 추리의 연쇄 과정이다. 이 책은 최초로 김수영의 도쿄 시절 거주지를 발굴해내기도 했다. 와세다대학 대학가의 자유롭고 지적인, 그러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간혹 사랑을 찾아 헤매기도 하던, 20세 식민지 청년 김수영의 열정과 절망과 방황의 나날들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 아닐까. 30세대 되던 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김수영은 인민군에 강제징집되고 여기서 탈출해 포로생활을 한다. 참혹한 그곳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김수영은 1956년 서울 마포 구수동으로 이사한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과 가족을 추스릴 수 있었다. 그곳에서 4.19를 겪고 5.16를 감내하면서 1968년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김수영은 '혁명과 반혁명' 사이에서 내면의 혁명을 꿈꿨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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