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

절집 곳곳에서 만나는 숨은 주인들

2019-10-11 11:27:17 게재
노승대 지음 / 불광출판사 / 2만8000원

#. 본생담이 중국으로 건너온다. 그런데 중국에는 악어가 흔하지 않으므로 악어 대신 용으로 대체하여 용과 원숭이 전생담으로 바뀌게 된다. 다시 우리나라로 건너와서는 악어의 아내가 용왕이 되어 토끼의 간을 원하고 용은 자라로, 원숭이는 토끼로 변신하게 된다. 곧 악어나 원숭이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므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로 대체하여 대중에게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꾸민 것이다. 그럼 왜 자라가 토끼를 등에 태우고 용궁으로 가는 장면이 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져 절집 안에 나타나게 된 걸까? 용왕의 신묘한 능력으로 만들어진 용궁은 불교에서 바닷속에 있는 또 하나의 불국정토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사령과 사신 - 거북> 중에서

사찰은 종교적 의미 외에도 전각, 불상, 불화 등 문화재 보고이기도 하다. 그런데 절집 곳곳에는 정성을 들여야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주인들이 숨어 있다. 법당의 현판 옆을 뚫고 고개를 내민 청룡과 황룡은 꼬리가 저쪽 법당 뒤편까지 뻗어 있다. 그 옆에는 야차가 힘겨운 표정으로 사찰 지붕을 이고 있다. 법당 안 기둥에는 용에 쫓긴 수달이 나 살려라 달아난다. 불단 아래쪽에서는 가재와 게가 맞서 겨루고 있다. 한쪽 벽에는 신선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기도 하다. 책은 이들 외에도 현판 뒤에 숨어있는 멧돼지, 사천왕 밑에 깔린 도깨비, 절 뒤편 은밀한 전각 안에 있는 삼신할미까지 절집 곳곳에 숨어 있는 주인들을 찾아 나선다.

상주 남장사 극락보전 내부 벽화. '별주부전'의 내용을 그렸다. 사진 불광출판사 제공


책은 일반적인 문화재 안내서처럼 전각 불상 불탑을 쫓아가지 않는다. 사찰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지만 그 의미가 남다은 보물들을 찾아 나선다. 이들이 절집에 살게 된 사연도 다양하다.

사연을 몇가지 흐름으로 정리해 보면 첫째는 임진왜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반야용선 개념이다. 사찰이나 전각을 생사고해를 넘어 피안의 정토에 이르게 하는 배로 본 것이다. 그러니 주변은 바다다. 바다에 수중생물이 없을 수 없다. 물고기, 거북은 물론 게, 가재 등이 등장한다. 둘째는 민화의 유행이다. 민화가 절집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건 19세기부터다. 그전까지 사찰 벽에는 주로 불교와 관련 있는 그림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민화의 유행으로 불교 교리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동물과 식물들이 등장한다. 넝쿨이 풍성한 포도 그림(다산), 갈대를 꽉 부여잡은 게 그림(과거 합격) 등이 그렇다. 셋째는 사회적 분위기나 사건의 영향이다. 임진왜란 등 전쟁으로 사찰이 불에 타고 역질로 많게는 수십만명이 죽어나가던 현실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수달이나 해태 그리고 심지어는 멧돼지까지도 화마 방지를 위해 절에 세워두었다. 사찰에 장승이 등장하는 시기도 전염병 창궐과 시기가 일치한다. 아예 전각 자체를 바꾸기도 했다. 시왕전과 지장전은 전쟁과 역질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명부전이라는 이름으로 합쳐져 망자들을 위로한다. 넷째는 다른 종교나 민간신앙의 영향 때문이다. 사찰에는 도깨비나 삼신할미처럼 우리 민족 고유의 민간신앙에 영향을 받은 그림과 조각들이 있다. 또 유교의 영향을 받아 매란국죽도 곳곳에 새겨져 있으며 도교 영향을 받아 중국 팔선이 사찰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각자 다른 사연을 풀어주고자 때론 불교경전이 동원되고 때론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가 등장하며 때론 다른 종교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이 땅까지 온 것도 있으니 당연히 역사와 지역에 대한 이야기도 가득 차 있다. 특히 책에는 사연을 지닌 동물과 식물, 상상과 전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담은 약 400여장 사진이 함께 실려있다.

저자는 1975년 광덕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나 10여년 뒤 환속했다. '보고, 딛고, 글로 정리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에밀레박물관 조자용 관장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18년간 스승으로 모시기도 했다.

특히 저자는 구도의 길에서 내려왔으나 마음속에 남겨둔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전국 각지의 문화 기행을 다녔다고 한다. 1993년부터는 문화답사모임 '바라밀문화기행'을 만들어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또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인사동 문화학교 교장을 맡기도 했다. 인사동 문화학교 졸업생 모임인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회원들과도 전국 문화답사를 다니고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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