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 부적응학생 줄이는 대안은

"학교-가정- 사회 연계한 치유·예방 시스템 구축 시급"

2019-10-15 11:33:46 게재

학교폭력은 감소했지만, 부적응학생 증가

사회양극화 현상 그대로 학교로 들어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아이들 중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유형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특히 한부모 가정일수록 상황은 더욱 좋지 않습니다.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 중 상당수가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학교 상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교육부, 시도교육청,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지자체, 경찰청 등 관련 부처가 협업해야 아동 청소년 학대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녁식사 시간을 놓칠 정도로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전 충북지역 학생들이 지난달 20일 위기학생 치유프로그램인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에 참여한 멘토(대학생)가 쓴 '멘토보고서' 일부다. 김석용(충북대학교 4학년)군은 2박3일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하면서 아이들과 공감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2일째, 아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형 같은 멘토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멘토는 부모 폭력으로 심장병과 우울증, 불면증 진단을 받은 이강우(가명. 충북 ㅅ고1)군의 이야기를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같은 학교 친구들이 강우를 위로했다. 멘토들은 2박3일 짧은 행사로는 '아이들 마음을 치유하기엔 부족하다'는 의견을 보고서에 적었다.

그나마 2박3일 짧은 일정이지만 상당수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연다. 시간이 갈수록 휴대폰을 스스로 내려놓고 친구들과 밤늦게 대화를 한다. 특히, 아이들 상태와 유형에 따라 강사들은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해 상처받은 아이들 마음을 치유한다.

충남 공주시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진행한 치유프로그램은 스스로 조별규칙을 정하고, 자연과 호흡하며 동화가 되는 시간을 갖는다. 오감트레킹, 미션 런닝맨, 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목공예를 진행한다. 대부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생명을 살리는 팀에게는 선물이 돌아간다.

미션- 돌탑쌓기


죽이는 게임에서 살리는 게임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면서 공감능력을 높여간다. 요리전문가인 연수원 비구니 스님(무용스님)의 요리시간에는 활기가 넘친다. 마지막 날 밤. 아이들은 강당에 텐트를 설치하고 소원나무를 만든다. 자신의 심장에 소원을 쓴 색종이를 넣어 나무에 달고 깜깜한 밤하늘 보고 소원을 빌어본다.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기도 한다.

손현주 명상 강사는 "나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을 통해 온전한 나와 만남을 갖고, 내 자신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온전한 나와 만나기' 프로그램을 마친 아이들 얼굴은 맑고 밝아졌다. 대전 ㄱ 고교에서 참석한 이수아(가명. 고1)양은 "그냥 마음이 편해졌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의 따뜻한 말로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내 자신이 나의 상처를 없애는 데 가장 소중한 역할을 한다는 것 알게 됐다"고 설문지에 적었다.

요리수업 지도하는 무용스님.


◆'부적응, 위기학생' 단어 사용하지 말아야 = 최근 교육부는 '위기학생' 또는 '부적응학생' 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이에 맞는 이름을 고민 중이다. 유은혜 부총리는 공문이나 각종 문서, 서류에 '위기'나 '부적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학생 개인마다 잘하는 분야가 있고, 이를 발굴하고 맞춤형 지도와 교육을 통해 학교생활 만족도를 높여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출발선이 같고, 학생 눈높이와 관심분야 따라 공정한 기록과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미래 삶을 얼마든지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요리

성적이 우수하거나, 다소 떨어지는 학생들도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수준은 비슷했다. "쌤 저는 졸업하고 나면 뭐해먹고 살아요?"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대부분이 던지는 질문이다. 대학을 포기하거나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아이들은 아무리 고민해도 자신의 미래 직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나 대도시가 아닌 중소도시나 시골지역 학생들의 진로고민은 대학입시 이상으로 깊다는 게 '숲으로가는 행복열차' 운영진들의 증언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첫날 입소시작부터 생활수칙을 스스로 정한다. 낯선 아이들과 같은 조를 짜고 식사, 취침 등 함께하기도 한다. 생활수칙은 긴 시간 토론을 통해 조원들 모두 찬성을 거쳐 결정한다. 조별 미션이나 게임 등 모든 프로그램에서 조원들의 결정은 반드시 토론과 친구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하기 때문에 참여율이 높다. 아이들은 "학교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해보고 나니 기분이 좋고 자신감이 생긴다"며 "이기는 것보다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죽은 나무로 화분 만들기

◆대전교육청, 맞춤형 치유프로그램으로 위기학생 줄어 = 올해 국정감사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초중고생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4년간 55%가 증가해 교육청 단위에서 전단관리체계가 필요하다며 국회의원들은 목청을 높였다. 최근 5년 동안 초·중·고 학생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은 총 549명에 달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초·중·고교생들이 매년 늘고 최근 4년간 55%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극단적 선택을 한 학생은 고등학생(67.2%)이 가장 많았으며 중학생(29.8%), 초등학생(3%) 순이었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학생도 최근 3년간 대폭 증가했다. 2016년에 71명에서 2017년 451명, 2018년 709명으로 3년 새 약 9배로 늘었다.

이유도 10년 전과 달리 성적비관이나 친구관계에서 가정불화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가정불화(26%)가 가장 많았고 처지 비관 등 우울감(18.3%), 성적·학업 스트레스(12.7%) 순으로 나타났다.

사회 양극화 현상이 그대로 학교 안으로 들어왔다는 게 대전교육청 담당 장학관의 설명이다. 유영길 대전시교육청 장학관은 "교육청 안에 '마음건강지원센터 심리검사요원'을 두고 해당 학교로 찾아가며 관심군 학생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푸른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

2015년 93명에서 2018년 144명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학생은 전국적으로 1.5배 증가했다. 그러나 대전시교육청 통계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대전은 2015년 6명에서 2019년 현재 1명으로 대폭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위기학생 감소 뒤에는 교육청이 운영하는 촘촘한 맞춤형 시스템 덕분이다.

대전시교육청은 사고가 많은 학기초 상담주간을 운영하며 생명존중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형식적 교육이 아닌 학급별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관심군 학생에 대해서는 전문상담치료기관 및 의료기관과 연계해 지원하고 있다. 300여개 학교에 학생정신건강증진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해 1박2일 동안 아이들과 함께한 남부호 대전시교육청 부교육감은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절실하게 깨달았다"며 "이러한 치유 프로그램에 더 많은 아이들과 교사(상담교사)들이 참여해 공감능력을 높여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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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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