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착취물 수사 때 피해자 구제 최우선”

2019-10-31 11:00:39 게재

아동이 피해 신고해도 무혐의 처분 … 아동에 입증 책임 돌려

법률상 아동음란물 기준도 협소 … 사춘기 이전 아동만 보호

아동 성착취영상 사이트를 운영하다 적발된 손모씨 등 한국인 범죄자들이 대거 검거된 사건 이후 충격파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선 가벼운 처벌만 하고 있다는 자성뿐만 아니라, 수사과정이나 법률 측면에서도 구멍 뚫린 부분의 전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씨 가벼운 처벌 놀랍지도 않아” =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아동성착취 다크웹 문제와 대안 마련을 위한 긴급토론회’에 참석한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다크웹 사이트가 적발되고 죄질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는 것이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면서 “(아동성착취영상) 문제는 이미 심각했지만 소관부처가 다르다, 서버가 해외에 있다 등의 이유로 미온적인 조치를 취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번에 국제공조수사를 통해 200명이 넘는 한국인이 아동성착취 사이트 관련 범죄자로 적발됐다는 충격 덕분에 더 주목 받았을 뿐이지 문제의 심각성 자체는 예전부터 지적됐는데 별다른 대처가 없었다는 것이다.
30일 오전 국회에서 아동성착취 사이트 등에 대한 대안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탁틴내일 제공


이 대표는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명백히 아동이용음란물의 제작.배포.소지에 대해 처벌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를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있다”고 지적했다. 영상 속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되는 경우에만 아동음란물로 인정하는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라고 봤다. 이 대표는 “2014년 대법원 판결을 보면 사회 평균인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할 때 외관상 의심의 여지 없이 명백하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되는 경우여야 한다며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기준을 협소하게 적용했다”면서 “이렇게 되면 2차 성징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은 어린 아동들만 보호되고, 청소년들을 보호하는데는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다”고 했다.

◆아동성착취 영상에 관대한 인식, 범죄에도 영향 = 아동 성착취 영상에 대한 관대한 인식과 가벼운 처벌은 사실상 아동음란물 범죄를 방조하는 수준이어서 피해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탁틴내일 아동청소년 성폭력상담소에서 지원한 사례를 보면 촬영과 통신매체를 이용한 피해 건수가 매년 증가추세(2016년 149건, 2018년 247건)다. 이 대표는 “포르노그래피 산업이 증가하는 것은 범죄를 범죄라고 인식하지 않게 만들고 청소년의 범죄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면서 “가해 청소년 범죄 중에서도 촬영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고 했다.

인식이 높지 않다 보니 아동 성착취물 관련 수사도 실효성 있게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대표는 "아동·청소년이 피해를 신고해도 수사기관은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무혐의 처분을 한다"며 "피해자가 어릴수록 수사기관이 적극 나서 가해자가 촬영한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데도 아동에 입증책임을 돌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촬영과 관련해 아동이 대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수사초점이 바뀌기도 한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아동성착취 관련 처벌 강화에 대해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개인의 일탈이 아닌 조직적 범죄로 보고 수사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박예안 변호사는 "다크웹뿐 아니라 일반 채팅 앱으로도 성착취가 가능한데다 인터넷 특성상 단 한번의 영상 공유로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며 "이를 참고해 양형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또 "한국 법원은 손씨의 사이트에 올라온 영상 중 회원들이 업로드한 것이 상당하다는 점이 유리한 정상으로 적용됐지만 미국에선 오히려 이를 '공모혐의'로 별도 기소했다"며 "법원이 이 문제를 아동의 피해 정도가 아닌 소비 횟수로만 따지는 것 아닌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아동 성착취물 소비자도 엄중처벌해야 = 사이트 이용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도 필요하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법임에도 접속해 돈을 지불해가며 아동 성착취물을 소비하고 공유한 사람들이 사이트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온라인에서 성범죄자의 자유를 상당 부분 제한하고 있는 해외 사례를 소개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미국 19세 청년이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10세 남자 어린이를 성추행한 사건이 벌어진 뒤 뉴욕주 법무부가 성범죄자의 온라인 게임 계정을 중지하는 방침을 밝혔고 마이크로소프트, 블리자드, EA 등 게임 회사들이 동의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는 성범죄자가 SNS를 사용하려면 자신의 범죄 내용, 관할 법원, 주소, 신체 특징 등을 표기해야 한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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